▲ 양평군 강상면 남한강 산책로에서 나들이 나온 한 가족이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인일보=글┃양평/박승용·이윤희기자]양평은 예로부터 용문산을 의지하고 호수를 베고 누웠다고 해 물과 숲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속세를 버리고 자연으로 은둔코자 하던 지식인들에게 최적의 장소를 제공하며 이름을 알렸다.

조선 후기의 명사이자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다산 정약용은 그의 시 '미원은사가'에서 꽃이 피면 꽃을 구경하고, 흥이 나면 술을 마시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노래하면서 양평땅을 이상향(utopia)으로 여겼다. 나아가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까웠던 탓에 당쟁에서 밀려난 정객들이 와신상담하며 중앙으로의 재진출을 염두에 두고 낙향했던 곳이 양평이다.

이런 양평을 얘기하면서 남한강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남한강을 양평에선 양강(楊江)으로 부르며 많은 선현들이 예찬해 왔으나 지금은 많이 잊혀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향토학자들은 여주의 남한강을 '여강'으로 부르는 것처럼, 양평의 남한강은 '양강'으로 불려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양강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옛 선현들이 왜 그토록 양평을 좋아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 시대를 아우르는 양강을 만나다

양평군 강상면에 위치한 남한강 산책로는 5.8㎞구간에 조성돼 남한강변의 뛰어난 조망권을 끼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산책로로 통하는 강상체육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남한강변의 산뜻한 바람이 오른쪽에서 살랑 불어온다. 왼편에는 숲길을 따라 산책로가 우릴 맞는다. 3월이지만 아직까지 제법 쌀쌀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봄을 느끼려는 인파인지 삼삼오오 많은 이들이 길을 걷고 있다. 운동복을 갖춰 입은 사람은 물론 머리를 식히러 나온듯한 넥타이부대,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정식 복장을 갖추고 MTB(산악용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눈에 띈다. 참고로 남한강길은 양평 산악자전거 코스중 하나로 구간구간 코스 루트가 표시돼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동감이 넘치는 남한강 산책로는 중간중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하루 평균 2천여명이 애용한다고 한다.

▲ 친환경 목제데크로 연결된 전망대는 남한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200m쯤 걸었을까. 강변을 보니 조그만 나루터가 있다. 양근나루터다. 양근나루터는 두물머리(현 양수리) 지역의 나루터와 함께 양평지역 10여개 나루터중 가장 규모가 컸던 나루터로 꼽혔다. 양근나루터는 남한강 상류의 감자와 옥수수, 소 등이 내려왔고 서울서 올라온 절인 생선과 소금이 내륙으로 뻗어나가던 중요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도 시대 변화와 함께 서서히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 1930년대 경기도에서 3번째로 큰 장(수원-안성장 다음)이 양평에 서게 되자 주춤했고 1930년대 말 철도가 들어서며 쇠퇴하다가 1970년대 공업화와 교통수단의 비약적 발전으로 그 명맥이 거의 끊겼다.

그러던 것이 최근 관광자원으로 양근나루터를 복원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다고 하니 귀추가 주목된다.

조금더 걸으니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비슷한 것이 눈에 띈다. 전망대 가운데 큰 책이 펼쳐져 있어 다가가보니 책 형상을 본뜬 조형물이다. 조형물에는 수많은 낙서들이 빼곡히 차 있고, 마치 낙서를 통해 작품이 완성되는 듯하다. 이 조형물은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에서 입상한 작품으로 이것 외에도 길 곳곳에 다양한 작품이 배치돼 있어 또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별자리 돛단배, 반짝반짝 반딧불이 등의 작품도 한번 찾아보시라.

길이 평탄하다보니 여기저기 주변을 살펴보며 걷느라 걸음은 더뎌지기만 하는 듯하다. 하지만 산책로 전체가 친환경 소재와 설비로 꾸며졌고 공공예술이라는 장르도 새로워 시간은 빨리 흐른다. 날이 따뜻해지면 각종 이벤트도 전개돼 즐길거리도 많다고 하니 기대된다. 가족건강걷기대회, 갈산음악제, 에어로빅&스트레칭 교실 등 건강문화 이벤트는 물론 '이봉주마라톤대회' '양평MTB랠리'와 더불어 '경기레포츠페스티벌' 대회 등이 남한강 산책로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열린다.

이즈음 공원 한가운데 있는 시비가 눈에 띈다. 남한강을 바라보며 어느 시인이 썼다는데 공감도 되면서 다시한번 강을 바라보게 된다.

남한강, 양강을 바라보며 지은 시중 조선시대 택당 이식(澤堂 李植) 선생의 시조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이식 선생은 양강의 삼학사중 한 명으로 문단의 빼어난 선비로 별빛을 아우른 듯 문장솜씨가 빼어났다고 한다. 삼학사는 후대의 평가가 아닌 당대 권력자를 비롯한 세인이 붙여준 것으로 재야에 묻혀 있기는 하나 삼학사가 품고 있는 역량에 중앙 실권자들이 항상 촉각을 세우고 호시탐탐 역신(逆臣)으로 옭아매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식 선생 외에도 현곡 정백창(玄谷 鄭百昌), 소암 임숙영(疎菴 任叔英)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양강을 따라 30리 이내에 집을 마련해 은거하며 한가로이 농사를 짓고 낚시를 하면서 유유자적했다. 아름다운 풍경속에서 좋은 절기를 만나면 배를 띄우고 말을 몰아 회합을 가지곤 했다. 이들 삼학사는 양강의 아름다움을 '문주지승(文酒之勝)'이라 해 풍경이 빼어나 시를 짓기 좋고 벗과 음주를 하기 좋은 곳으로 자랑했는데 특히 1622년 7월 기망(旣望)에 소동파(蘇軾)의 적벽(赤壁) 고사를 따라 양강(楊江)에 배를 띄우고 달구경을 하면서 노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시비를 뒤로 하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인근에 위치한 인조축구경기장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초등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축구연습에 한창이었다.

몇 발자국 걸었을까. 이번에는 샛길이 들어왔다. 양평장과 이어지는 길이란다. 앞서도 말했듯 양평장은 한때 도내 3대 전통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현재까지도 3, 8일에 장이 선다. 우리 옛 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고 정이 담긴 쏠쏠한 재미도 느낄 수 있어 주말에 가족, 연인과 함께 양평역에 내려 양평 5일장에도 가보고 이곳까지 걸어보는 것도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평지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곳에서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고갯길이 등장했다. '헉헉' 대던 가쁜 숨을 고르며 길을 걷길 수분, 저 너머로 길 막바지가 보였다.

산책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가량 지난 후였다. 물을 한모금 마시고 완행한 뒤 다시 강변을 바라보니 또다른 볼 것들이 눈에 띈다.

"봄에 더욱 느낌을 드러낸다"는 군청 관계자의 말처럼, 앙상한 모습을 드러낸 나무들이 옷을 갖춰 입고 색을 발하면 얼마나 멋질지 자못 봄이 기다려진다.

※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