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수해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비 피해를 겪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난 27일 오후 8시 시우량 81㎜의 폭우가 쏟아져 순식간에 허리춤까지 침수된 동두천시 중앙동·보산동 등 저지대 주민들은 31일 또다시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복구작업에 몰두했다. 보산동 관광특구 상가주민들은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덤프트럭에 연방 퍼 나르고 있었다. 보산역 주차장은 전날 잠깐 비가 그치면서 생겼던 흙먼지가 또다시 진흙탕이 돼 악취마저 진동하고 있었다. 28일부터 복구작업이 시작된 시가지 전통시장은 발빠른 응급복구로 영업이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피해가 컸던 보산동은 쓰레기 수천t 분량이 길가에 버려진 채 수거차량 행렬이 쉴틈없이 드나들었다. 특히 이런 복구행렬에 300여명의 주한미군도 동참, 눈길을 끌었다. 총 대신 삽자루를 쥔 미군병사들은 골목골목마다 내다버린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 중장비로 처리하고 각 구역마다 4~5개 조로 나뉘어 응급복구에 힘을 쏟았다. 외국인업소 종업원들도 하루라도 빨리 손님을 맞기 위해 실내청소에 분주했다.
1998년과 1999년 수해를 입은 뒤 13년 만에 다시 수해를 겪고 있는 시민들은 복구에는 이골이 났지만 앞으로의 걱정이 가슴을 짓누른다.
가재도구는 말할 것도 없고 팔려고 진열해 놓았던 의류, 신발, 가방 등이 모두 쓰레기로 변해 버렸다.
주민 김은성(45)씨는 "쓰레기 처리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긴 한숨만 내쉬었다.
신천 범람과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연천군 청산면 저지대에서는 이날 민·관·군 자원봉사자들이 진흙으로 뒤범벅된 도로복구 작업에 나섰고, 전곡읍 간파천 일원 공장지대에서는 근로자들까지 출근해 복구에 힘을 쏟았다. 또 하천범람과 산사태로 피해를 겪은 군부대도 진지보수와 매몰된 부대차고지는 배수로를 내고 차량정비를 위해 견인작업을 서둘렀다.
주민 김종구씨는 "쓰레기는 치우고 집안은 정리하면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계가 막막하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오연근기자
"군부대 밀집 포천지역 장병 수백여명 투입… 각종 수인성 전염병 우려 방역작업도 병행"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최고 7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7명이 사망하고 도로와 농경지가 유실되는 등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가 난 포천지역은 비가 소강상태를 보인 29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수해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한때 위험수위에 다다랐던 포천천은 31일 오전 소나기성 비가 간헐적으로 내렸지만 수위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하천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대부분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비가 오는데도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은 상류에서 떠내려온 천변 쓰레기를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포천에서만 48건의 산사태가 발생, 산사태 지역에 수해복구 인력이 집중됐다.
특히 일가족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동면 기산리 산사태 현장에는 육군 8사단 군장병 200여명이 동원돼 수해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은 마을 진입로와 빌라단지 등에 산처럼 쌓인 토사를 치우고, 침수된 건물에 들어가 물을 퍼냈다.
8사단 김지열 중위는 "부대 600여명의 장병이 산사태와 침수가 심한 포천 북부지역에 투입돼 토사 제거와 농수로 복구, 비닐하우스 철거 등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군부대가 밀집한 포천지역 특징상 이번 수해복구 작업에도 군장병들의 역할이 컸다. 침수피해가 큰 사직리에도 8사단 소속 인근 부대 장병 160여명이 나와 침수가옥에서 토사와 물을 퍼내고 물에 젖은 가재도구들을 밖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16년간 식당을 운영해 온 이승주(56)씨는 "마을 26가구가 한꺼번에 침수피해를 입었다"며 "군장병들이 나와 이렇게 수해복구 일손을 도와 고마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각종 수인성 전염병 등을 막기 위한 방역작업도 한창이다. 또 43번 국도상 폭우로 파인 도로에 대한 긴급복구작업도 계속됐다.
하지만 아직도 일동터널 37번 국도에는 낙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차량운행에 위협요소가 되고 있었고, 도로변 일부 주유소들은 밀려든 토사로 영업을 포기하고 복구작업을 벌였다.
/최재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