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사마다 사극물을 편성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SBS 드라마 '무사 백동수'가 월화극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며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백동수의 실제 삶을 궁금해하는 시청자들도 많이 생겨났다. 역사속의 실존 인물인 백동수(白東修·1743~1816)를 국내 최초로 발굴해 낸 사람은 현재 수원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호(48)씨다. 그는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접한 '한국의 전통무예'라는 책 한 권 때문에 삶의 진로를 완전히 바꿨다.

그 책은 감옥에서 빗자루를 들고 무술을 연마했다 해서 '빗자루 도사'로 알려진 임동규 선생이 쓴 것인데, 우리 고유의 무예에 중국·일본 무예의 장점을 합친 '24반 무예(무예24기)'의 형성 과정과 유래, 기본동작을 그림과 곁들여 해설한 책이다.

김씨는 이 책을 읽고 1990년 여름, 임동규 선생이 있던 광주로 찾아가 막노동으로 신혼살림을 꾸리며 무예24기를 익혔다. 그러면서 그는 무예24기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가 직접 편찬의 방향을 잡은 후 당시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이덕무·박제가와 장용영 장교 백동수 등에게 명령해 만들게 된 무예 훈련 교범입니다. 다른 군사서적들이 전략 ·전술 등 이론을 위주로 한 것임에 비해 이 책은 전투 동작 하나하나를 그림과 글로 해설한 실전 훈련서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이덕무·박제가는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비해 백동수라는 사람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어요. 호기심이 생겼죠. 그때부터 부족한 한문 실력으로 백동수가 관련돼 있을만한 역사책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김씨는 무려 7년여의 노력 끝에 무예도보통지의 편찬 총감독을 맡아 조선 무예의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백동수와 한국 무예의 역사, 조선 무사의 이야기를 다룬 '조선의 협객 백동수'를 2002년에 펴냈다. 바로 백동수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 첫 순간이었다.

이 책이 나온 후 백동수의 삶을 모티브로 한 역사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학계에서도 백동수 관련 논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관심에 힘입어 각 방송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김씨에게 백동수 드라마를 만들자고 여러 차례 제의했고, 실제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는데, 막상 드라마 판권 계약은 엉뚱하게도 김씨의 책을 참고해 만화책으로 만든 스토리 작가와 이뤄졌다. 백동수를 처음 발굴해 낸 김씨로서는 참으로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참고삼아 드라마를 시청했던 그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황당무계한 설정과 역사적 왜곡때문에 계속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정조시대에 실제로 활약했던 백동수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TV에서 백동수는 천방지축의 꽃미남 무예 고수로 그려지고 있는데, 실제 백동수는 북한산에서 무뢰배들과 충돌했을 때 상대 두목이 그의 얼굴만 보고 슬그머니 줄행랑을 놓았을 정도로 험상궂고, 몸이 날렵하며 힘이 장사였어요. 그는 이십대에 이미 주먹세계를 평정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서얼 출신이었기 때문에 벼슬길이 막히자 미련없이 서울을 떠나 강원도 기린에 들어가 가축을 기르고, 무예를 연마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마흔을 훌쩍 넘긴 1785년에야 비로소 정조 임금이 그를 선전관에 임명했고, 이때부터 그는 그동안 갈고닦은 무예 실력을 맘껏 펼쳐 정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됩니다."

김씨는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사료를 더 참고해 지난달 '조선의 협객 백동수(푸른역사)' 증보판을 내놨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가 문(文)에 치우치고 무(武)에 인색한 역사였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역사 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가 이러한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이 책에 담긴 조선 무사 백동수의 생애와 '무예도보통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도 자랑할만한 무의 역사와 무예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선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