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운 (소설가)
누군가 실력있는 상대의 공격을 받아 투쟁 끝에 지는 사람은 막상 드문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원균 제독을 죽도록 만든 사람은 사실상 그에게 장형(杖刑)을 가한 권율이나 다름없고, 이순신을 죽인 건 승장(勝將)인 그를 잡아다가 모욕주고, 백의종군시키며 무리하게 등 떠민 선조 이균이라고 해도 꼭 틀린 말이 아니다. 일본군이 너무나 용맹해서 실력으로 졌다면 이런 표현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원균이나 이순신은 불리한 때, 불리한 장소에서 그들이 원하지 않은 전쟁을 치르다 전사했다. 벼랑에서 사람을 밀어 강물에 빠뜨려 죽이고는 강이 깊어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일본군이 용맹해서, 무적이었더라면 이런 가정은 서지 못할 것이다.

고금의 역사에서 왕이나 제후가 제 명에 죽지 못하는 사례를 찾아보면 다른 나라하고 전쟁하다 죽는 게 아니라 하찮은 태자나 세자 같은 아들, 요리사, 광대, 환관, 말단 병사들에게 시해당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충신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막상 죽음을 무릅쓰고 모셔온 주인이나 동료한테서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충신이 왕이나 제후보다 힘이 더 세질까봐 그런다. 혹은 민심이 그를 너무 따를까봐 그런다.

지난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일어난 한나라당 현역의원 대규모 낙천 사건은 막상 라이벌인 민주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부의 협잡꾼들, 말하자면 동지들이 나서서 다른 동지들의 뒤통수를 친 것뿐이다. 자리는 정해져 있고 줄은 너무 길다. 그러니 내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동료를 죽여야 내 부하를 그리 밀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또한 안철수, 박원순 카드에 저렇게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대통령을 만들어준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이란 새 살림을 꾸려나간 2002년에 이미 갈등이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하기 전 검찰에 시달리던 그를 악독하게 비판한 사람들은 뜻밖에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출신 의원들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심지어 배반의 아픔을 겪은 당시 민주당 잔류 의원들은 도리어 말을 아꼈다. 도리어 동지라던 사람들이, 노무현의 덕을 본 사람들이 그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런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느닷없이 검정리본을 달고 여기저기 빈소를 차려 놓고 상주노릇을 했다.

민주당 뒤편에서는 이른바 친북좌파라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더 좌로 가라고 뛰고 소리친다. 언론, 단체, SNS 등으로 무장하여 이 나라를 책임지는 공당인 민주당을 극좌로 몰아간다. 그럴 때마다 내응하는 사람이 더러 나오고, 이들이 고개를 쳐들어 소리치면 당 정체성은 여지없이 흔들린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보인지, 좌파인지 그들도 혼란스러워 한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해도 그게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판단하는 기준조차 불분명해진다.

한나라당 뒤에도 그런 세력들이 있다. 한나라당 그림자나 뒤편에 숨은 세력들은 더 우로 가라고 소리친다. 쳐부수고, 때려잡으라고 요구한다. 벌써 단체가 꽤 되고,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매체까지 쥐고 채찍질을 한다. 이러다 보니 힘에 밀린 건전 보수세력도 점점 극우로 가려는 욕구를 느낀다.

대개 외전(外戰)은 승패를 가늠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내전(內戰)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요, 막상막하요, 좌충우돌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육이오전쟁 이후 60여년간 외전이 없다 보니 내전으로 시끄럽다. 내전에 가까운 이념 전쟁이 그 도를 넘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치닫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적당히 줄을 타며 "난 중도!"라고 외친다. 그런데도 치유에 나서야 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도리어 뒷짐 진 채 당내 소통, 동지간의 대화를 막고 있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극좌, 극우 세력만 몸집을 불려나간다. 건전한 보수, 건전한 진보는 설 자리를 잃어간다. 보수는 가짜 보수에 죽고 진보는 가짜 진보에 죽는다. 극좌가 아니면 진보가 아니고 극우가 아니면 보수가 아니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