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사람을 품은 길'을 찾으러 눈 덮인 남한산성 성곽로에서 시작된 연중기획 '신(新) 휴먼로드'. 천지에 눈꽃 가득하던 겨울, 초록의 설렘이 가득하던 봄, 유난히도 무더워 푸르름이 더했던 여름, 코스모스 하늘거리던 가을을 지나 어느덧 경기·인천지역의 사계절을 관통해 이제 길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사람이 길을 만들고 길은 사람을 품는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지면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다. 그 길에서 사람들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위안을 만난다. 굳이 멀리 길을 찾아 떠날 이유가 있나. 나 사는 곳에서 잠시만 벗어나도 우리를 품어줄 길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신 휴먼로드는 그런 길을 찾아주는 가이드였다. 이번 편을 끝으로 기획은 끝나지만 우리를 맞아줄 숨어있는 길은 여전히 많다. 그 길에서 사람들과 동행하는 일을 멈추지 말자.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도심속 하천을 따라 이어진 탄천길을 인위적으로 조성했다고 하여 삭막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연형 하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 계절따라 다양한 자연 생태를 느낄수 있고, 도심과 조화를 이뤄 오히려 다채롭고 색다른 풍경을 제공한다.

삭막한 빌딩 숲의 도심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성남 탄천.

조금은 인위적인 요소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지만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간직하려는 사람의 손길이 있어 어색하지만은 않다. 그래서인지 성남시민들은 낮과 밤이면 산책과 조깅을, 자전거 동호인들은 교통장애 없이 자연을 달릴수 있는 최고의 코스로 손꼽는다.

탄천의 유래는 중국 한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한나라 무제때 금마문 시중을 지낸 동방삭이라는 사람이 서왕모의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은 탓에 장수하게 됐는데 인물이 비범하고 꾀를 잘 내어 저승 염라사자들이 그를 저승으로 데려가지 못하면서 무려 삼천갑자(18만년)를 살았다고 한다. 이에 옥황상제가 신출귀몰한 '동방삭'을 잡기 위해 한 개울에서 '검은 숯을 씻어 호기심을 자극하라'는 명을 내렸고 그 소문을 들은 동방삭이 '내 삼천갑자를 살면서 숯을 물에 씻어 희게 만든 사람은 처음 봤소'라며 접근하는 것을 붙잡아 저승으로 데리고 갔다 해 '숯내', 또는 현재의 '탄천'이라 명명했다는 재미난 유래가 내려오고 있다.

또 성남시 탄동(현재의 태평동)이 과거 광주시 중대면 탄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본래 숯골, 독정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으며 이곳에 조선 경종 당시 남이장군의 6대손인 '남여이'라는 이가 살았던 곳으로 그의 호가 '탄수'여서 그의 호를 따서 '탄리'라고 했으며 그 내를 '탄천'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쏠쏠한 재미가 담긴 탄천, 붉게 물든 노을과 아파트 숲 사이로 비쳐오는 석양을 맞으며 연인, 가족과 함
께 산책을 떠나보자.

#물길따라 떠나는 생태기행

도심속 하천이어서 조류와 어류가 얼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 탄천은 본류 외에도 동막천, 분당천, 운중천, 금토천,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등 모두 7개의 지류가 흘러 자연형 하천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남시도 이들 지류를 대부분 산책코스로 정비해 1시간 정도면 도심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단순히 길을 걷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꽃과 나무, 새, 물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생물을 접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면 더욱 뜻깊은 추억이 될 듯싶다.

우선 A코스인 상적천을 따라가 봤다. 얼마 걷지 않아 대왕저수지를 만날 수 있었다. 대왕저수지는 이름처럼 크고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도심과 가까워 작은 정원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코스를 이탈해 인근에 위치한 신구대학 식물원을 방문, 어린이정원, 허브원, 계절초 화원 등 각양각색의 식물과 곤충을 관찰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듯싶다.

금토·운중천의 B코스는 도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한적하고 도심의 소음이 아닌 풀내음과 산새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연인과 조용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조용한 산책을 원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C코스인 동막천에 들어서니 서서히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터. 참자, 스스로 채찍질을 할 찰나, 붉게 물든 벚나무와 은빛 머리칼을 흩날리는 물억새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 낙생교 쪽을 따라 걷다보니 시인 두보가 '꽃이 피는 대나무'라며 수반에 키웠다는 닭의장풀이 열매 맺고 있었고 운이 좋게도 흰뺨검둥오리의 짝짓기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D코스(여수·야탑천)는 자연형 호안과 습지가 조성돼 있고 버드나무와 고다리 등의 습지식물을 관찰할 수 있으며 E코스(분당천)는 분당저수지와 중앙공원이 자리잡고 있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과 휴식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지류를 벗어나 탄천 본류에 대한 탐색전(?)에 나섰다.

대화를 하면서 산책하는 사람, 시원한 가을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학생, 그리고 탄천에서 유유히 그들을 바라보며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직박구리, 쇠백로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성남비행장 주변의 '탄천습지생태원'. 과거 솜대용으로 썼다던 '부들'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부들부들 부드러워서 '부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부들'은 핫도그 같은 열매에 솜털 같은 씨앗을 물고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다. 가을, 탄천의 가을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책과 낭만이 있는 산책로

이들 코스 가운데 중앙공원과 율동공원으로 이어지는 E코스는 주변의 시설과 한데 어우러져 더욱 인기있는 코스다.

낮 기온이 다소 높아서인지 조금 걷다보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해 겉옷을 벗었다. 하지만 이내 불어오는 다소 찬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따사로움과 시원함이 공존하는 구간이다. 연인끼리 자연스럽게 팔짱을 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코스 곳곳에는 푸른 잔디가 누런 빛을 내며 가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으며 갈대와 억새도 하얗게 피었고, 고마리꽃의 군락도 눈에 띄었다.

특히 중앙공원내 분당호는 분당천을 끌어들여 조성한 연못으로 경주의 안압지를 원형으로 만들었으며 경복궁의 경희루와 창덕궁 애련정을 원형으로 지은 돌마각과 수내정이 자리하고 있어 또 다른 재미를 맛 볼 수 있다.

자리를 옮겨 율동공원에 들어서자 요한성당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풍경과 율동호수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산의 단풍이 조화를 이루면서 또하나의 장관을 연출,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율동공원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책을 주제로 한 책테마파크와 작고 귀여운, 익살스러운 조각들로 채워진 조각공원, 호수로 뛰어드는 듯하게 만들어진 번지점프대 등은 연인과 가족들이 가을을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 최고의 코스로 불리는 성남 탄천길을 따라 탐방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탄천길은 용인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이어진다.

#탄천, 웰빙을 위한 건강코스

용인에서부터 서울 여의도까지 총연장을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탄천은 자전거 동호인들의 최고의 코스로 불린다.

이를 위해 성남시도 자전거 거치대 35개소를 비롯해 곳곳에 음수대와 공기주입기, 탈의실 등 동호인들의 편의시설을 설치했으며 농구장(9개), 축구장(1개), 인라인스케이트장(8개), 배구장(1개), 파크골프장(1개), 게이트볼장(3개) 등 각종 운동시설도 갖춰놓고 있다. 어르신들은 파크골프장에서 골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학생들은 농구골대에 모여 슛을 날리며 내일의 농구선수의 꿈을 꾸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성남시 분당구보건소는 IT를 활용한 건강관리 걷기코스 시스템인 '탄천, 운중천 U-HealthRoad'를 구축, 주 3회 생활체육강사를 투입해 올바른 걷기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개인용 신체 활동계를 소지하고 탄천변을 걷거나 주변 운동시설을 이용해 운동한 후 탄천 곳곳에 설치돼 있는 헬스리더기에 접지하면 운동량이 웹으로 전송되고, 운동 목표량에 미달하면 더 많은 걷기와 운동을 재촉하고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지속적인 운동을 하게끔 동기를 부여한다. 이용을 원하는 시민은 분당구보건소(031-729-4005)나 판교보건지소(729-4242)를 방문해 등록 후 참여하면 된다.

이밖에도 불정교 근처에 놓인 징검 여울을 건너면 지난 6월부터 'U-웰빙존 건강지킴이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성남시에서 운영하는 '건강지킴이 부스(금곡공원)'가 나온다. 건강지킴이 부스란, 자신의 체질을 측정한 후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운동기구를 선택하고 무선인식시스템으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나 시설은 무료란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기전에 탄천에서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작은 추억을 만들어보자.

성남/배상록·임명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