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이 8일 오후 경기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일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납치 토막살인 사건과 관련, 허점투성이인 경찰의 대응에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임열수기자

지난 1일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납치 토막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허점투성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은 8일 현재까지 수사 과정을 발표하면서 기본적인 책무를 완수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 검거 이후 112신고센터의 통화시간 등 각종 발표들이 거짓임이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경찰은 피해자 유가족이 있는 가운데 대기발령에 따른 신임 수원중부경찰서장의 꽃다발 취임식을 진행, 유가족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등 비난을 자초했다.

■ 신고 및 지령단계, 허점투성이 = 경기청 112센터는 피해자 A(28·여)씨가 사건 당일인 지난 1일 오후 10시50분께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 못골놀이터 전 집인데요. 성폭행당하고 있어요"라고 긴박한 상황임을 알렸으나 신고자의 위치와 주소만을 반복해서 질문했다.

경인일보가 입수한 '112 범죄신고접수 처리표'에도 사건 발생장소가 '먹골놀이터 가기 전'으로 기록돼 있다. 사건 발생 당일 신고자 A씨는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 못골놀이터 전의 집'이라고 말한 것으로 녹취돼 있지만, 접수자는 '집'이라는 단어는 빠뜨린 채 사고지점으로부터 800m나 떨어진 '못골놀이터 부근'을 발생장소로 단정, 안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또 112센터 직원은 상황실에 근무한 지 2개월밖에 안 돼 '못골'을 '먹골'로 잘못 인식할 정도로 지리와 지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1분20초의 대화시간 후 긴박한 상황이 전화기를 통해 6분 넘게 더 지속됐지만 상황실내 20여명 중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12 처리표'에조차 '현재 스카치테이프 붙이는 소리가 남'이라고 태연하게 기록만 남겼을 뿐이다.

이와 함께 위치 파악이 안 됐음에도 녹취 내용을 다시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1분20초에 불과한 신고자와의 짧은 통화내용을 되돌려 들어봤다면 첫 통화 당시 접수자가 놓쳤던 '집'이라는 단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경기지방청 112센터장의 어처구니없는 해명은 "다시 들을 수 있었지만 당시 갑작스레 전산시스템이 다운됐다"는 거였다.

■ 사건축소, 허위답변 = 지난 5일 경기청은 수사내용을 발표하면서 112신고센터가 숨진 A씨와 1분20초를 통화했다고 했지만 실제 연결시간은 7분36초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8일 감찰 조사결과와 수사 진행상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서천호 경기청장은 "사건 발생 직후 녹취록이 1분20초라고 보고받았다"며 "이후 7일에서야 현장 내용과 7분여간의 시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신고자와의 전화 통화시간이 15초, 1분20초, 4분 등으로 계속 말이 바뀐 것은 중부서 형사과장 등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채 추측성 답변을 했기 때문이며 녹취된 부분은 1분20초, 전체 통화시간은 7분36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비명 등 계속 전화가 연결돼 있던 시간이 공개되면 경찰의 안이한 대응에 비난여론이 비등할 것을 우려해 이같이 녹취록 통화시간을 줄여 언론에 공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지배적이다.

■ 수사지휘라인 감독소홀 = 당시 중부서 상황관리관은 단순 성폭행 사건으로 안이하게 판단해 인력 추가배치나 현장지휘, 보고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급박한 상황이 계속되는 동안 수사를 지휘한 수원중부경찰서 형사과장은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부서 형사과장은 오후 11시41분께 사건발생 보고를 받았으나 단순 성폭행사건으로 안이하게 판단, 형사들을 추가 배치하지 않고 집에서 대기하다 사건 발생 10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9시10분께에서야 현장을 둘러본 것으로 밝혀졌다.

수원중부서 동부파출소 순찰팀장도 현장지휘 지침에도 불구하고 파출소내 근무자로 지정돼 있다는 이유로 현장에 나가지 않았고, 파출소장에게 사건을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서장도 다음날 아침 사건을 보고받았다.

■ 꽃다발 취임식 = 지난 6일 오후 4시께 A씨의 유가족이 수원중부경찰서를 찾은 가운데 문책성 인사에 따른 신임서장 취임식에서 '꽃다발 증정'까지 진행되면서 유가족들은 "지금 뭐하는 짓들이냐. 여기가 잔칫집이냐"고 격분했고 유가족과 김성용 신임서장이 경찰서 현관에서 10분 넘게 대치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 징계 등 조치 = 경기청은 지휘 감독 책임을 물어 수원중부경찰서장과 형사과장, 112센터를 총괄하는 경기청 생활안전과장 등 10명을 엄중 문책키로 했다. 또 경기남부지역 일원에서 통합운영중인 112신고 운영체계를 수원·성남·안양·부천 등 4개 권역으로 세분화해 정밀 대응키로 했다. 112신고센터의 근무성적 가점을 부여하고 살인·강도·성폭행 등 사안별로 표준질문지와 구체적 대응조치 내용을 매뉴얼로 만들어 컴퓨터상에 표시되도록 시스템을 개발키로 했다. 신고내용이 현장 경찰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신고내용을 출동경찰관이 반복 청취할 수 있는 시스템도 도입키로 했다.

/이경진·황성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