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없이 공연하는 악단도 있어요. 악단 규모가 작고 지휘자의 역할이 애초에 크게 필요하지 않은 작품만 연주한다면 지휘자가 없어도 됩니다. 다만, 그럴 때에도 악장이나 다른 누군가가 지휘자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지휘봉만 안 들었을 뿐이죠. 사실, 오늘날과 같은 전문 지휘자가 나타난 때는 19세기입니다. 그래서 이를 테면 18세기 작품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협연자가 지휘자를 겸할 때가 잦아요.
특수한 사례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마음에 안 들면 단원들이 지휘자를 따돌리고 '지휘자가 지시한 것보다 더 아름답게' 연주해 버리기로 유명합니다. 전통과 실력이 있는 악단일수록 지휘자 말을 안 듣고 연주자 자신의 해석을 지휘자에게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지요.
그런데 그 콧대 높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을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지휘자도 있더라고요. 20세기 관현악곡을 연주하는데, 트럼펫 연주자 하나가 틀린 음을 연주했어요. 그런데 틀린 대목에서 트럼펫 네 대가 독립적인 선율을 연주합니다. 결정적으로 무조음악이고, 다른 악기까지 더하면 무시무시한 음표의 카오스 상태이지요. 그런데 지휘자는 두 번만에 '범인'을 잡아냅니다! 살아남은(?) 단원들이 가슴을 쓸어내려요. 그 지휘자는 피에르 불레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