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세의 김형석 교수님을 만났다
내 허기진 청소년 시절
순수·이상에 대한 감화 일으켜준
수필 '영원과 사랑의 대화' 저자
내 정신의 행로 되돌아보는 시간
어지럽게 훼손된 자화상이 비친다
아래층 주방에서 마시고 싶은 차를 골라 2층으로 올라오면, 벽면이 서가로 둘러진 책 읽는 메인 홀이 있고, 문화적 수다를 떨 수 있는 방도 있고, 작은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더러는 강연도 하고, 이런저런 전시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목적 문화 공간이라는 말이 그럴싸했다.
도서관 카페 개소식에 참석했던 나는 그날 인상적인 장면 두 가지를 만날 수 있었다. 하나는 94세의 노교수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내 허기진 청소년 시절, 그 절절한 궁핍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순수'와 '이상'에 대한 감화(感化)를 불러일으켜 주었던, 그 유명한 에세이 '영원과 사랑의 대화'의 저자 아니신가. 책으로만 머리에 각인되어왔던 선생님을 면전에서 뵐 수 있었던 것은 큰 감회(感懷)를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기념식이 시작되기 전이라 홀 한 구석에 앉아 계시는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며, 젊은 날 선생님의 애독자이었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옆자리를 권하신다. 다가가 앉아 말씀을 나누었다. 선생님의 책을 읽던 고등학생 시절 내 순정한 감동을 선생님은 아실까. 오랜 시간을 거쳐 마음으로 그려오던 사람을 해후하는 것처럼 나는 두근거렸다. 이런 느낌을 무어라 그래야 되나.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처럼, 무언지 모를 충만감과 함께 행복했다. 아주 은은하게.
이러한 내 마음의 감사와 위안은 오프닝 기념식에서는 더욱 그윽하게 이어졌다. 김형석 교수님의 축사 스피치가 나를 더 친근하고 따스하게 내 성장기 저편의 세월 안쪽으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축사는 의례(儀禮)로 마련된 것이었지만, 그것은 이미 의례를 넘어서 있었다.
축사 자체가 아주 아담하고 향기로운 한 편의 특강으로 들려왔다. 잘 차린 정신의 메뉴와 더불어 잠시 지혜의 향연에 초대된 듯했다고나 할까. 그것은 열여덟 시절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읽던 분위기와 기묘하게 겹쳐서 교차되며 내 기억의 창에 점등되어 왔다.
말씀은 부드러운 듯 반듯하게 그리고 메시지는 깊은 통찰을 담아 올리되, 쉽고 소박한 언어로 베풀어졌다. 백세를 내다보는 나이임에도 단상 위의 그는 정정하고 또렷하고 그것에 더하여 한없이 온유하다. 건강이 왜 미덕의 일종이 될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몇 가지 생활 태도를 언급하시는데, 아주 단순하고 담백하다. 노교수의 축사는 독서와 지혜와 언행이 조화를 이루어 높은 품성으로 녹아나는 그런 경지를 이야기하신다.

나는 열여덟 살 무렵 김형석 교수의 책을 읽으며 순수와 영원에 동경을 느끼고, 그런 사랑과 그런 이상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마음에 탑을 쌓던 나를 이곳에서 다시금 아득하고도 절절하게 만난다. 이런 해후의 감정이야말로 실로 오랜만이다. 아울러 그 순수와 영원의 동경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떠밀려 나왔는지, 얼마나 세상의 때를 묻히며 지내왔는지를 참으로 확실하게 깨닫는다.
내 정신의 행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허락받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신의 세계와 첫사랑처럼 교유하던 무렵의 내 자화상을 만난 듯하여 스스로 감화에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갈 자격조차 없는, 지금의 어지럽게 훼손된 자화상이 비친다.
그러나 그러한들 어찌하랴. 나는 그날 그 자리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순수에 몰입하려 했던 청년의 '나'를 생생한 감화로 환기시키기도 마음처럼 쉽지 않을뿐더러, 온갖 세상 오욕을 다 묻혀 훼손된 '나'를 이렇듯 평명하게 반성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으리라. 이런 날이란 앞으로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 다른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개소식을 마치고 나오는 자리에서 맞게 되었다. 도서관 카페 개소를 축하하러 온 하객으로서 예를 표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해 간 축의봉투를 전하려 했더니, 축의를 받는 방식이 유별나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축의를 사용해 달란다. 그러면서 도서관 카페 개소를 축하하는 정성만큼 연탄을 기부해 달라는 것이었다.
연탄 한 장에 450원, 날라다 주는 운임 50원을 더하면 한 장에 500원꼴이 된다고 한다. 정말 오랜만에 연탄 값을 실감나게 확인한 셈이었다. 그리고 진짜로 오랜만에, 이 겨울 한기에 차가운 방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았다. 연탄으로 축하해 달라.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하고 사는 걸까. 다시 잔잔한 감화가 내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연탄 몇 백 장을 기부하였다.
오늘 나에게 독서는 무슨 인연이고 연탄은 또 무슨 인연으로 다가온 것일까. 독서와 연탄, 그들끼리는 또 무슨 인연으로 엮어져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일까. 카페 바깥으로 나오니 흰 눈발이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