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해 봤다.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는 고전(?)은 차치하더라도, 어째서 교사에 대한 폭행이 이리 자주 벌어지는 걸까. 학생들의 교사 폭행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반항과 일탈이라고 치자. 학부모들의 교사폭력은 정말 상식 밖이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유심히 관찰했던 게 있다. 학부모와 교사의 나이다. 100%는 아니지만, 학부모가 교사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창원 교사 폭행의 당사자들도 학부모는 45세, 교사는 32세다.
갑을 관계로 빚어지는 여러 부조리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며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갑을 관계는 기업에, 직장에, 영업 현장에 만연돼 있다. 하지만 아무 관계없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갑을 관계는 작동되고 있다. 상당부분은 나이에 따른 갑을 관계다. 그리고 창원 교사 폭행에서처럼 많은 부작용이 아무 일 아닌 듯 벌어진다. 경찰에 입건되는 가장 많은 혐의는 폭력, 그 가운데 '주폭'이 단연 압도적인데 상당수가 반말 시비다. "당신 몇 살인데 반말이야"로 비롯되는 시비는 자칫 살인까지 부른다. '을'로 취급당하기 싫음이다. 길거리에서 담배피우는 학생들을 훈계하는 어른들도 폭행을 당한다. 반말하며 훈계하는 '갑'에게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은 이를 수용하지 못한 채 폭력을 배설한다. 최근 사회복지사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박봉에 과다한 업무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그들이 가장 못견뎌 했던 것은 민원인들의 '막말'과 욕설이었다.
나이, 반말과 관련된 부작용들은 생활속에서 비일비재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의 상견례에서 얘기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 우선 지연, 학연이다. 고향을 묻고 출신학교를 물으며 공통분모를 찾으려 한다. 빨리 친해지기 위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이내 눈치를 보다 어렵사리 나이까지 확인한다. "실례지만 올해 몇이냐." 서로 신상파악이 끝나면 대충 나이의 순열이 정해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투가 다소 변화된다. 그 중 연장자는 은연중 반말을 쓰고 호칭·존칭이 점차 줄어든다. 갑의 위치에 있으려 드는 것이다. 좋게 보면 자연스러움, 친근감의 표시지만 못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불쾌감 그 자체다. 대수롭지 않은 사례로 넘기기에는 나이 차와 반말로 인한 갈등과 다툼이 너무 흔한 세상사다.
유독 나이로 위아래를 따지는 문화, 존댓말과 반말이 뚜렷하게 구분돼 있는 우리의 언어문화에 대해 외국인들은 경로효친과 응집력 있는 공동체라며 호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문화 때문에 갑을의 종속관계를 숱하게 경험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란 속담이 있다. 굳이 우리의 오래 된 미풍양속인 장유유서의 경건함을 폄하할 생각은 애당초 없다. 다만,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명제가, 연장자는 대접만 받으며 '갑'이 되려 하고, 연소자는 자신을 무시한다며 '을'의 분노인 양 폭발한다면 이는 장유유서의 정신이 왜곡, 변질된 것이다. 장유유서의 본질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데까지 맥이 닿는다면 이는 상호 존중일 것이다. 상호 배려와 존중이 결국 상생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말투와 호칭에서부터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지금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갑을 갈등 해결의 단초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우영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