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박성현기자
현역 유리한 기초단체장
민주가 많은 수도권서
새누리 무공천 쉽지않아
1991년에도 첨예 대립

항상 선거 유불리 놓고
보이지 않는 손 작용
2005년까지 끝없이 변화
결국 기초의원으로 확대


국내 정치가 국민들과 새끼 손가락을 걸었던 가장 큰 약속은 단연 '정당공천제도 폐지'일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 모두 이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공약은 정당과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을 실행하겠다는 약속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4·24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자치단체장(가평군수)과 기초의원(고양시의원) 선거에 한해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민주당은 공식선거법 개정이 우선이라며 정당의 후보를 내세웠다.

여기까지는 일단 새누리당이 먼저 약속을 지킨 것처럼 보이지만 내년 6·4 지방선거를 9개월여 남겨 둔 지금은 사정이 뒤바뀌었다.

민주당은 당원투표를 거쳐 폐지로 당론을 정리한 반면, 새누리당은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란 멍에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공천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미묘한 기류가 새누리당내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분위기는 지난 7월 말 최고위원회의에서 고개를 들었다. 정우택 당 최고위원은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며 정치 본연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재검토를 주장했고 이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결과를 놓고 보면 국민과 맺은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을 지킨 건 민주당뿐이다.

# 당리당략에 따른 정당공천제

= 정당공천제가 이뤄질 듯하면서 멈칫한 이유는 선거의 유불리를 놓고 양 당이 열심히 '주판알'을 튀기기 때문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당 관계자들은 "정당 무공천제를 시행한다 해도 영·호남처럼 지역색이 뚜렷한 지역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문제는 수도권이다.

기초단체장 선거가 현역 시장에게 유리하다 보니 새누리당으로서는 민주당 소속 시장이 다수인 수도권 때문에 무공천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 수도권 66명의 시장 중 민주당 소속이 70%에 달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공천제 논란에도 '주판알'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30년 만의 지방선거 부활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1991년 구·시·군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방선거에서의 정당 참여 여부에 대해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과 야당인 평화민주당(평민당) 등이 첨예하게 맞섰다.

당시 민자당은 "지방선거에 정당이 참여할 경우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화되고 정치논리로 지역사회가 분열돼 지방의 자율적인 성장을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평민당 등은 "정당의 참여가 적합한지 여부는 주민들이 선택할 문제"라며 "또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서는 정당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여당은 선거에 유리한 지역 유지들이 대부분 여당 성향이라 굳이 정당공천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었고, 야당은 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야당 성향의 후보를 알려 지지세를 규합해야 했다.


# 정당공천제의 끊임없는 변화

=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으로 공천제는 늘 변화를 거듭했다. 1994년 각각 나뉘어 있던 대통령선거법과 국회의원선거법, 지방의회의원선거법 등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으로 통합되면서 기초단체장·의원으로까지 정당공천을 실시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이전까지는 광역단체장·의원 선거에만 정당공천을 실시했다.

1년 만인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직전 여당인 민자당에서 '지방행정의 탈정치화'를 내걸며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 다시 공론화됐다.

당시 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되는 등 선거판세가 여당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한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기초의원에 대해서만 정당공천을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조정됐다.

2003년 헌법재판소가 기초의원만 정당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은 평등원칙 등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관련 법 조항인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84조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2005년 기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공직선거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공천 범위도 기초의원으로까지 확대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앞으로의 정당공천제는

= 정치 전문가들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정치를 새로 바꾸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지만 국민의 70%가 찬성하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더욱이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대다수 국민의 염원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당공천제 폐지의 부작용으로 거론되는 여성과 20~30대 젊은층, 장애인 등의 정치참여 기회 축소와 후보 난립현상, 지역 토호세력의 유리 등의 문제는 얼마든지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당공천제 폐지는 이미 지난 대선과정에서 한 약속이다. 이달부터 공직선거법 개정을 위한 사회 전반의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추이가 주목된다.

/김민욱·강기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