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공약 이행보다
민주주의 기여도 우선
20대 반대비율도 높아
개혁과 상반될까 우려
헌재 "유권자 선택도와"
공익적 순기능 손들어
비리 인과관계 입증안돼
존폐 논의 더 신중해야
지난 1988년 지방의회의원선거법의 제정으로 지방선거가 부활한 후, 정당공천제는 한국 정치 무대에서 번번이 '뜨거운 감자'였다.
정당의 선거 참여가 공천과정에서 이권 다툼 등 각종 잡음을 낳을 뿐 아니라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결과로 이어져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방해한다는 반대논리에도, 정당 중심의 '책임정치'를 가능케 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도와 궁극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를 실현시킨다는 정당공천제의 순기능은 논란이 일 때마다 꾸준히 지지를 받아왔다.
더불어 여성과 장애인, 청년 등 상대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정치 참여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점은 숱하게 일었던 폐지 논란에도 정당공천제가 유지될 수 있던 기반이 됐다.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정치 개혁을 이뤄내겠다며 여·야 후보 모두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이후, 지금까지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의견 대립이 거센 만큼, 공약이라고 앞 뒤 잴 것 없이 무조건 이행하기보다는 어느 쪽이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참된 약속'을 실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의미다.
# 지역유지 판치는 선거판, 사회적 소수자 배제된 선거판
정당은 적합한 후보를 추천하고 유권자는 이를 토대로 지역 혹은 국가의 대표를 선출한다. 이처럼 정당공천제는 정당이 후보들의 자격여부를 검토해 난립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거름망' 역할을 하도록 했다.
당내에서 경선 과정 등을 통해 여러 번의 검증을 거친 끝에 '어느 당 누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는 점 때문에 유권자들도 상대적으로 '믿고' 고를 수 있다는 게 정당공천제의 이점이다.
이에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경우 어디에서도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자격미달인 후보들이 곳곳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역내 30%, 비례대표 50%에 대해서는 여성후보에게 공천을 주도록 하는 등 여성, 장애인, 청년들의 정치참여 폭을 넓히는 데 기여했던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시, 사회적 소수자들의 정치 입문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도 다수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갤럽이 발표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20대의 반대비율은 30%로 집계됐다.
다른 세대에서 반대비율이 18~24%로 나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공천제 폐지가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다는 점에 20대가 공감했기 때문이라는 게 한국갤럽의 분석이다.
(사)한국여성정치연구소도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던 지난 2002년, 전국 기초의원 중 여성의원 비율은 2% 남짓이었지만 2005년 기초의원에까지 공천제가 확대된 후 여성의원 비율은 2006년에는 15%, 2010년에는 21%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공천제 폐지가 정치개혁과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투명한 공천 실현이 우선
2003년 헌법재판소는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을 금지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84조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며, 정당공천제 폐지가 참된 지방자치 실현에 기여하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오히려 헌재는 2003년과 2011년, 공천제가 유권자의 후보 선택을 돕는다는 점에서 공익적 역할이 크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헌재가 공천제의 순기능에 손을 들어준 점을 토대로,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공천제 폐지가 아닌 '제대로 된 유지'가 참된 대의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공천과정에서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는 궁극적인 약속을 지키는 길이라는 의미다.
한국정치학회는 "공천제 도입 후 지방선거에서의 부정부패가 공천제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며 "정당공천제 존폐 논의는 객관적이고 엄밀한 데이터에 입각해 판단돼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강기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