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대학 사회과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학병 징집을 피해 중국 상하이로 피신했다. 상하이에서 사업을 재개한 그는 어떤 일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흑인시'로 유명한 그의 동생 배인철(1920~1947)도 몇 해 뒤 상하이로 뒤따라 왔는데 여기서 '무역업'을 하던 형 배인복의 도움을 받았다는 내용이 여러 글에서 확인되고 있다. 배인철 ...
김민재 2019.10.09
... 문화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한국 미학(美學)의 선구자라 불리는 우현 고유섭(1905~1944), 대법원장을 지낸 조진만(1903~1979),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역 이길용(1899~?), 흑인시를 개척한 시인 배인철(1920~1947) 등이 경인기차통학생 친목회 문예부 출신이다.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2005년 펴낸 인천론집 '황해에 부는 바람'에서 "경인선은 일제의 군사적 ...
박경호 2019.09.18
...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나 청록파 시인 박목월 등과 깊이 교유했다. 인천의 향토사학계에 우뚝한 최성연(1914~2000) 선생은 일석 이희승이나 천경자 화백과 가까웠다. 또 우리나라에 '흑인시'라는 낯선 장르를 탄생시킨 배인철(1920~1947)은 박인환, 김기림, 오장환, 김광균, 임호권, 이병철, 정지용, 서정주 같은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어울릴 줄 알았다. 이들이 활동하던 ...
정진오 2017.08.20
... 있다. 신소설이 그랬듯이 해양문학·노동문학·분단문학도 인천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흑인 병사들이 포함된 미군의 최초 상륙지역인, 그리하여 미군부대 주둔의 시작점인 인천에서는 '흑인시'라는 낯선 장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 '흑인시'는 인천에서 다시 싹이 트기를 70년 기다려 왔다. 새로 생길 한국문학관이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
이현준 2016.05.31
... 테일러와/맥주를 마시며/저 세상에서도 흑인詩를 쓰고 있느냐./해방 후/수없는 청년이 죽어간 인천땅 진흙밭에/너를 묻고 온 지 스무날/詩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시인 김광균(1914~1993)이 흑인시인 배인철을 인천 주안 공동묘지에 묻고 나서 쓴 '詩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란 조시(弔詩)이다. 시인은 배인철이 없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읊었다. 그리고 배인철과의 정감 ...
정진오 2014.06.11
해방후 흑인병사들과 가깝게 지내며 작품 5개에 '약소민족' 아픔 녹여1947년 남산서 총격 피살… 우익테러 의혹 속 치정관계로 몰아 수사종결사후 시세계 비평·회고 줄이어… 인천서 '흑인시' 태동시켜 문학사 의미여전히 낯설기만 한 '흑인시'라는 장르가 이 땅에 생겨난 것은 1945년 해방과 함께였다.그 흑인시는 미군의 첫 상륙지점인 인천에서부터 시작되었다.흑인시라는 씨앗을 우리 ...
2019.10.10 15면
독립투쟁 전선 재정적 지원군… 총을 든 이들의 '총알'이 되다
2019.09.19 15면
경인선 위에서 시작된 민족해방… '국민을 결집하고 실력을 길렀다'
2017.08.21 13면
2016.05.31 01면
문학은 늘 인천을 다녀갔다
2014.06.12 09면
2014.06.12 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