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무릎꿇고 울먹인 "못난 아들" 文의 '고해성사'

5·18 묘역 1시간 순례…충장로 '반성문'…'시민군 주먹밥' 식당도 방문
쓴소리도 나오고 지지자들 '환호'도 교차…"지원유세 아니다" 환호 자제 당부

연합뉴스

입력 2016-04-08 11: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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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김홍걸 광주공동선대위원장과 참배하며 무릎을 꿇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8일 야권의 심장부 광주를 찾아 "야단을 맞으러 왔다"며 무릎을 꿇었다.

호남에서 더민주가 벼랑끝에 몰린 가운데 문 전 대표는 싸늘하게 돌아선 호남 민심을 되돌리는 데 하루종일 '고투'했다. 수행원 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당 국민통합위원장만 동행했다.

이번 방문이 호남에 번진 '반문(반문재인) 정서'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문 전 대표는 '못난 아들'을 자처하며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후 호남에서 반문정서가 누그러지며 반전을 이뤄내느냐, 아니면 역풍을 불러오느냐에 따라 문 전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좌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전 대표의 광주 방문은 지난해 11월18일 조선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특강을 한 후 142일만이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약 60분간 국립 5·18 민주묘지(신묘역)와 구묘역을 순례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소화했다.

복잡한 심경을 반영하듯 조금 구겨진 양복 차림으로 나타난 문 전 대표는 시종일관 입술을 굳게 다문채 어두운 표정이었다.

분향대에 도착한 문 전 대표는 무릎을 꿇고서 민주화 열사를 위한 묵념을 했다. 묘비가 아닌 분향대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후 60여분간 묘비를 찬찬히 둘러보던 문 전 대표는 "무고한 시민이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돌탑에 '광주정신 총선승리'라는 문구를 새겨넣기도 했다. 방명록에는 "광주정신이 이기는 역사를 만들겠다"고 썼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의 대선 불출마를 요구하며 삼보일배를 했던 광주 북갑 정준호 후보와도 통화를 나눴다. 

통화에서 정 후보는 "광주민심을 끌어안아 달라"고 했고, 문 전 대표도 "생각은 다를 수 있어도 충정은 이해한다"고 화답했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충장로 우체국 앞에 와서는 '작심 반성문'을 읽으며 또 한번 허리를 숙였다. 호남에 대한 '고해성사'였다 .

문 전 대표는 감정에 북받친듯 목이멘 채 울먹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못난 문재인이 왔다. 여러분에게 야단을 맞고, 질타를 듣기 위해 왔다"며 "분이 풀릴 때까지 호되게 꾸짖어 달라"고 했다.

그는 "더 자주 놀러오겠다"며 "미운정 고운정 다 든 못난 아들처럼 맞아달라"고 당부했다.

문 전 대표는 전남대 앞에서도 "저의 부족함에 대해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송구하다"고 했다.

이날 문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동행하며 '적통'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문 전 대표의 연설을 듣고는 "어떤 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표가 저희 아버지를 배신했다고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과거의 사사로운 감정을 뛰어넘어 정권교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그 뜻을 받들겠다"고 말했다.

오찬도 5·18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싸주던 식당에서 김 위원장 및 강기정 의원과 함께 먹는 등 '민주화 운동 성지'를 차례로 찾았다.

이처럼 '낮은 자세'를 보이면서도 국민의당에는 거센 공세를 이어갔다.

그는 "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을 이간질하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말아달라"면서 "광주 시민들이 바라는건 호남 밖에서 이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현장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드리워졌다.

일부 시민은 문 전 대표를 향해 "야단을 맞으려면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며 진정성이 없다고 질타했고, 다른 시민은 "사과 요구는 국민의당 천정배·박주선 의원에게나 가서 하라"고 받아치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애초 '조용한 유세'를 벌이기로 했지만, 곳곳마다 지지자들 위주로 시민들이 몰려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충장로 우체국 앞 연설에는 지지자 500여명이 몰렸고, 문 전 대표가 사과를 할 때마다 "잘못한 것 없다", "우리는 문재인을 믿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일부 참석자는 '대통령은 우리가 만든다. 문재인 파이팅' 등의 문구가 쓰인 손팻말을 들고 문 전 대표의 이름을 연호했다.

광주공원에서 시민들을 만나면서도 환호를 받거나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 등이 쏟아지면서, 일부 시민들은 "대선 출정식 같다"는 반응도 보였다.

오히려 문 전 대표 측에서 이런 분위기를 부담스러워 하며 "지원유세를 온 것이 아니다. 환호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사과가 아닌 떠들석한 유세처럼 비쳐질 경우 오히려 역풍이 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전남대에서 사전투표를 한 후 청년들과 40~50대 장년층을 잇따라 만나고 광주에서 하룻 밤을 보내기로 했다.

9일에는 전북으로 넘어가 정읍과 익산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한 후 전주에서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상경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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