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공무원 사망사건] 악성민원 막아줄 '통화녹음'… 하고 싶어도 못한다

김우성·조수현 기자

발행일 2024-03-12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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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민원 응대과정 폭언 대처요령 배포
폭언 발생시 불가피한 경우에만 녹음 '규정'
민원인 입장만 고려한 비현실적 지침…반발
일선 공무원 "모든 행정전화 자동녹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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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행정전화번호를 자동녹음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진은 김포시청 민원실 전경. 2024.3.11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도로 긴급보수 및 피해보상 업무를 담당하던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좌표 찍기'와 그에 따른 항의전화 폭주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가운데, 정부의 민원응대 지침이 지나치게 민원인 위주로 구성돼 악성민원 법적대응을 위한 통화녹음을 제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월 5일 온라인 보도=[단독] 인터넷카페 좌표 찍힌 김포시 공무원 숨진채 발견)

민원담당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전화상 폭언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경인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안전부는 지난 2022년 7월 '공직자 민원응대 매뉴얼'을 개정해 공무원들이 통화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폭언 대처요령을 배포했다.

이에 따르면 민원인이 전화로 욕설과 협박을 할 때 민원담당 공무원은 '선생님 폭언을 계속하시면 상담이 어렵습니다. 정확한 상담을 위해 통화내용을 녹음하겠습니다'라고 고지한 뒤 녹음을 시작해야 한다. 녹음하는 와중에도 민원인이 폭언을 멈춘다면 녹음을 중단하고 정상적으로 응대해야 한다.

이는 민원처리에관한법률에 근거한 지침으로, 해당 법 시행령 제4조에서는 '민원처리 담당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의 예방 및 치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 가운데 민원인의 폭언·폭행 등이 발생했거나 발생하려는 때 증거수집 등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녹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선 시·군에서는 이 같은 행안부 지침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 조항이 발목을 잡아 민원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자동으로 녹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와는 다르게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는 금융사·통신사 등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상담내용이 녹음된다"는 고지와 함께 자동녹음을 하고 있다.

경기남부 한 지자체 정보통신관련 부서장은 "이미 폭언이 발생했거나 발생하려는 때에 녹음버튼을 누르라는 건 말도 안 되고, 녹음을 고지하려 들면 민원인이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라 폭언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철저히 민원인 입장만 고려한 비현실적인 지침"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김포시 관계자는 "민원인들에게 통화녹음을 고지하면 '무슨 법에 근거해 녹음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며 "공무원 대부분 전화 응대 도중 심각한 폭언을 경험해 봤을 텐데, 모든 행정전화번호를 자동으로 녹음한다고 하면 반대할 공무원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경진 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가천대 법학과 교수)은 "공무원들이 민원업무를 수행하는 중 녹음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정부지침이나 내부훈령 등 근거 마련을 통해 사전고지 형식이 아닌 자동녹음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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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조수현기자 wskim@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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