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사할린에서 영주 귀국한 동포와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가족과 고향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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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노동자 징용 아버지 찾아 러시아행
부모님 대신 60여년 만에 꿈만같은 귀향
‘아들과 작별’ 고향 찾은 가슴 아픈 대가
■ 만날 수 없는 가족
“아들 녀석하고 함께 살았으면 원이 없겠어요.”
지난 23일 인천 남동구에 있는 남동사할린센터 경로당에서 만난 사할린 영주귀국자 윤정내(74·사진·여)씨는 물론 평소에도 항상 보고 싶은 가족이지만 이맘 때면 함께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자식들이 더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윤씨의 아버지는 일제에 의해 1942년 러시아 사할린의 탄광 노동자로 강제 징용됐다. 갑자기 가장을 빼앗긴 윤씨의 가족은 이듬해인 1943년 가장을 찾아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그렇게 60여년을 러시아에서 살아온 그는 지난 2007년 한·일 양국 적십자사가 진행한 영주귀국 사업 대상자에 선정됐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에서 그와 같은 사할린 한인 남편과 함께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고국 땅을 그렇게나 밟아보고 싶어 했던 그의 부모님들은 불행하게도 결국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난 뒤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0여년이 지나서야 윤씨가 부모 대신 고향을 찾게 된 것이다.
고향을 얻은 대가로 사할린의 자녀와는 작별을 해야 했다. 영주귀국의 기회는 1세대에만 주어지고 사할린 한인 2세나 3세에게는 정착을 도울만한 아무런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어릴 적 러시아로 건너간 윤 할머니는 한국의 추석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사할린에서의 추석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게 남아있다고 했다.
“사할린에서는 음력이 아닌 양력 8월 15일에 추석을 보내요. 온 가족이 모여 먹고 떠들고….”
사할린에서 돌아가신 그의 부모는 죽어서라도 고국에 가고 싶다며 화장을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를 절대로 차디찬 땅에 묻어두지 말아 달라고 하셨어요. 뼈라도 고향 땅에 닿을 수 있도록 바다에 뿌려달라고 수도 없이 말씀하셨죠.”
윤씨는 함께 사는 ‘가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게 소원인 사람도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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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삶터를 떠나야만 했던 전쟁의 상흔
새로 자리잡고 대가족 꾸렸지만 ‘허전함’
北에 남긴 가족 강녕기원 추석망향대제
■ 찾아갈 수 없는 고향
지난 23일 오전 11시 인천시 남구 수봉공원 망배단에선 인천지구 이북도민회 주관으로 북에 두고 온 가족의 강녕을 기원하는 ‘추석망향대제’가 열리고 있었다.
“조상님들을 찾아뵙지 못하는 불경을 드려 죄송스럽다”는 말을 시작으로 조상님께 올리는 예가 시작되자 자리에 앉아있던 100여명의 실향민들은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냈다.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는 최병도(85·사진)씨 역시 눈물을 닦아내며 “언젠가는 고향에 갈 날이 오지 않겠느냐”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6·25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머물렀다. 고향을 영영 떠나게 될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던 날을 1950년 12월 12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전세를 뒤집자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수도 서울을 내주기 전이었다고 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황해도 연백에 있는 북한군도 모두 북으로 철수하며 고향의 경찰서에 주인이 없는 치안 공백기가 잠시 있었다.
그때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나서 경찰서에 있는 총기로 무장하고 자체 ‘치안대’를 조직했는데 그 일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될 줄 몰랐다. “중공군이 다시 내려오니까 바닥 빨갱이들이 설쳐대며 치안대 활동했던 청년들을 색출하느라 혈안이니 버틸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황해도에서 풍선(風船)을 타고 강화로 내려왔고 다시 인천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5남매 가운데 막내였다는 그는 자신도 다섯 자녀를 낳아 지금은 13명의 손주를 거느리는 대식구가 됐다. 해마다 명절이면 그의 집은 북새통을 이루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기만 하다. 그는 “하루가 걸리든 이틀이 걸리든 고생스럽긴 해도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결코 작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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