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개월 거주 심사절차·취업훈련
언어·문화·법 등 한국 간접 체험
임신부·미성년 시급성 따져 선발
정원 반도 못미쳐 ‘높은 문턱’ 실감
지역 주민과 잇단 마찰 고민거리
“딸이래요, 딸! 하루 빨리 난민으로 인정돼 한국에서 잘 기르고 싶어요.”
며칠 전 출입국 외국인 지원센터(영종 난민센터)에 기쁜 소식이 들려 왔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난민신청자 리라(가명)씨가 딸을 출산한 것.
리라씨는 고국에서 부족 간 다툼과 차별로 괴로움에 시달렸다. 자식 만큼은 인종차별이 없는 곳에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녀는 굳은 결심으로 낯선 땅에서 딸을 기르기로 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국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리라씨는 한 달 전부터 이곳 난민센터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센터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5개월 뿐. 그녀는 하루빨리 대한민국 땅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를 기도하고 있다.
종교 탄압이 없는 나라, 반정부적이란 이유로 옥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인종 차별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지극히 평범하고도 이상적인 꿈을 꾸는 곳, 이곳은 바로 ‘난민센터’다.
인천 중구 영종도 한적한 동네 한 가운데 서 있는 3층 건물. 얼핏 작은 대학 캠퍼스처럼 보이는 이곳의 면적은 3만1천143㎡로, 생활관(기숙사), 교실, 휴게실, 체육실, 보육실, 아이 놀이방 등 각종 시설이 있다.
입소자는 주로 생활관에 머무는데, 각 방은 1인실, 2인실, 가족실 등 모두 34개 실로 구성돼 있다. 개별 방은 모두 크진 않지만 하얀 벽지에 침대와 화장대, 화장실을 갖춘 일반 대학 기숙사와 같은 모습이다.
센터 관계자는 “한국어는 물론 한국 사회의 이해, 법질서 교육, 직업훈련 등 다소 어려운 수업이 진행되는데도 입소자들의 학업 열의가 높아 수강률이 높은 편”이라며 “아이들을 놀이방에 맡겨 놓아 입소자들이 안심하고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입소자들의 거주기간은 기본 6개월이나 3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해 최대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다. 이 기간에 센터는 입소자들의 난민 심사 절차에 필요한 서류 준비를 돕고 이들의 취업 훈련을 독려한다.
센터에 머무는 동안 난민 신청자들은 일을 할 수 없게 돼 있지만 퇴소 후에는 일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센터에서는 강사를 초빙해 직업 훈련을 위한 바리스타 특강, 요리 특강 등 다양한 직업교육을 하기도 하는데, 바리스타 교육은 특히 외국인들의 반응이 좋다.
대학 내 어학당을 연상케 하는 교실은 이들의 꿈과 희망, 삶의 의지가 함께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이곳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해 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았다. 2001년 첫 난민이 인정된 후 하루 평균 20여 명의 외국인이 종교, 인종, 정치적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난민 신청 후 심사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통상 8개월~1년. 경제적인 여유가 돼 머물 곳이 있거나 우리나라에 지인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난민 신청자들은 이 기간까지 기댈 곳조차 없다.
공동생활이 가능한가도 심사에 포함된다. 대체로 상황이 ‘시급한’ 사람을 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정원은 83명이지만 현재는 33명의 난민신청자만 이곳에 머물고 있다. 일각에서는 입소 기준을 너무 까다롭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센터가 문을 열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영종 신도시 주민들은 ‘영종을 대규모 난민촌으로 만드냐’며 반대 목소리를 내 센터를 완공하고도 개소까지 5개월이 더 소요됐다.
특히 난민 신청자들의 자녀들이 영종초등학교 입학 하루 전에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로 취소돼 다문화학교인 한누리학교에 입학하는 안타까운 일로 난민과 영종 주민 간 상처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센터가 주민들과 꾸준히 공청회, 간담회를 갖고 충분한 만남의 장을 열어 지금은 많은 우려와 불신이 잠식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난민과 주민 간 사이를 좁히는 것은 묵은 과제로 남아 있다.
현근영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장은 “개청 당시 편견이나 우려는 많이 불식됐지만 아직도 극복해야 하는 점이 많다”며 “앞으로 많은 노력을 통해 난민들이 편안하게 머물고 주민들에게도 인정받는 센터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