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과 정서적 충돌” 보류
본교로 발길 돌리니 학부모 반발
다문화 대안학교에 힘겹게 취학
다른 나라보다 긴 신청 기간 악용
2~3년씩 시간 끌며 돈만벌고 떠나
건수는 느는데 심사인력 태부족
색안경 대신 인도적 포용력 필요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7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만들었다. 난민법은 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으로 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출입국관리법 규약에 의해 난민을 받았다.
난민법에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난민은 심사 과정에서 변호사 조력을 받고, 통역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인천 영종도에는 ‘출입국외국인 지원센터’가 세워졌고, 입국 6개월 안에는 생계비와 주거시설도 제공 받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찾는 난민들은 아직도 사람들의 편견과 불합리한 제도 속에 고통받고 있다.
■ 편견과 차별에 힘겨워하는 난민들
지난봄 인천 영종도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 거주하는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가 된 11명의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당초 이들 학생은 학군에 따라 난민센터 인근 영종초등학교 금산분교에 입학할 예정이었지만 인천시 교육청은 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이 40여 명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입학을 보류했다. 기존 한국인 학생과 정서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교육청은 학생 수가 많은 영종초교 본교에 입학시킬 방침이었지만 해당 학교 학부모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학부모들은 난민신청자가 입학하면 등교 거부 등 단체 행동을 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역 사회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지난 4월 남동구에 있는 다문화 대안학교인 한누리 학교에 취학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영종도 아이들이 대표적인 난민 차별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난민에 대한 차별은 아이들만 겪는 것이 아니다.
난민들은 일반적인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더한 차별을 받는다. 난민 신청자가 되면 G-1 비자를 받는데 이 비자로는 단순한 일밖에 할 수 없다. 게다가 난민을 고용한 사업주가 2주마다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받아야 하는 탓에 대부분의 사람은 난민을 본인의 사업체로 받아들이기 꺼린다.
심지어 2주마다 자격을 갱신해야 하는 것을 알고서도 고용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 난민 신청이 취소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난민인권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류은지씨는 “난민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자를 발급받고 입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더 나쁜 조건에서 일하게 된다”며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의 난민은 소규모 공장이나 식당에서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7월 우리나라에 온 이란인 A씨. 무슬림으로 살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A씨는 종교 박해를 피해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했다. 이란에서는 아직도 기독교인은 수감되고, 고문과 화형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12년 2월 정치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구금되고, 고문을 당한 B씨도 정치의 자유를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다. 카메룬에서는 정당으로 등록되지 않은 단체가 정치 활동을 할 경우 경찰에 체포당한다.
그러나 A씨와 B씨 모두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이유는 뭘까?
난민법 제정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를 찾는 난민의 수는 급증했다. 2010년 423명이었던 난민 신청자는 2013년에는 1천574명, 지난해에는 2천896명에 달했다. 그러나 난민 인정률은 2010년 11.1%에서 2013년 5.2%, 2014년 3.2%로 떨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1천265명이 난민 심사를 받았지만 법무부 심사를 통해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2명(0.16%)에 불과하다. 난민법 시행 후 오히려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법무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난민신청을 하면서 인정률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 긴 우리나라의 난민 신청 기간이 오히려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불법 체류 노동자들이 난민신청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하면 법무부 심사·행정 소송을 거치며 최소 2~3년은 한국에 더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며 “이러한 이유로 2~3년만 돈을 벌고 가려는 불법 체류자의 신청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무부 난민심사관들은 난민신청 자체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강해졌고, 난민 심사는 까다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심사 인력 부족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 변호사는 “난민신청 건수는 늘고 있는 반면, 법무부 난민심사관 수는 그대로여서 심사가 1년 넘게 지연되는 사례도 많다”며 “또한 한 명이 수십 명의 난민을 심사해야 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거짓 난민들을 가려내야 하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난민을 도와야 한다는 주제의 기사가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 반응을 보인다. 난민 활동가와 전문 변호사도 이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난민을 우리가 꼭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류은지 활동가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고 있을 뿐”이라며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데 단지 다른 나라에 태어났다고 해서 돕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많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이러한 부분을 알리고, 자주 접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이 큰 것 같다”며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어울릴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이 같은 문제가 점차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