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떠난 부모·형제… 남은 피붙이는 외삼촌·이복형제
“다시 만나려면 건강하자” 영상편지 가득 채운 그리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할 기회가 빨리 오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단다.”
27일 오전 이산가족 박영호(83)씨는 담담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보고 싶은 그리움 때문이다.
마지막 목소리일 것이다. 혹시라도 통일이 된다면 남긴 동영상 목소리가 끝내 보지 못한 가족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그는 빌었다. 할아버지는 이날 자신의 마지막 영상을 남겼다.
언제 만날지 모를 북에 남겨 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대한적십자사 의 도움으로 이산가족영상편지를 남기는 박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적십자 직원들도, 옆에 함께 있어 줬던 경로당 친구들도 눈물을 훔쳤다.
할아버지는 지난 1932년 함경남도 안변군 안변면 학성리에서 태어났다. 외삼촌과 외가가 있던 함경남도 원산도 자주 왕래했다.
그는 편지를 읽는 도중 “이제 고향의 기억이 없어…”라며 슬픈 표정으로 유년기를 회고했다. 이제는 기억하고 싶어도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하지만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된 한국전쟁은 잊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1950년 10월, 국군이 이북을 수복하면서 당시 치안요원으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만에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하게 되면서 국군과 함께 동해안을 따라 대구로 후퇴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동생을 포함한 식구들은 안변과 원산에 그대로 남겨두고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세월이 벌써 70년이 다 돼 간다.
박 할아버지는 국내에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지난 2005년 처음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소식을 들었지만, 아버지 박명화씨와 어머니 진연화씨가 각각 1957년과 1992년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통곡을 해야 했다. 동생 박영철 씨도 이북에서 형을 기다리다가 1990년에 세상을 등졌다.
담담하게 영상을 찍던 할아버지는 부모님 사진을 꺼낼 때는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할어버지는 떨리는 한 손으로 부모님 사진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눈을 훔쳤다.
박 할아버지는 “이제 북한에 남아있는 피붙이는 나를 돌봐주셨던 외삼촌과 그의 조카들, 그리고 이복형제 뿐이야”라고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메시지를 영상에 담았다.
이어 “진홍연 외삼촌, 동생 박일남이와 대남아,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앞으로 만나려면 서로 건강하자. 형제가 우애를 가지고 만났으면 좋겠다”며 “이번 이산가족상봉 때 보게 되면 좋겠구나.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라고 아직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남겼다.
/김범수기자 fait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