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제호 변천사
경인일보 제호(題號)는 1982년 3월1일자로 경기신문에서 변경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경인일보의 경(京) 은 경기도를, 인(仁) 은 인천시를 뜻한다. 제호그대로 풀어보면 경기와 인천지역을 취재 권역으로 삼고 날마다 독자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이다. 경인일보는 1982년 2월26일자 사고(社告)를 통해 제호 변경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독자중심주의’ 표방 향토지 1945년 인천기반 대중일보 ‘원뿌리’
73년 경기매일·연합신문·경기일보 3개지 ‘경기신문’으로 통합
81년 인천직할시 분리 ‘경인일보’ 변경… 쉼없는 ‘수도권 특화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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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제호(題號)는 1982년 3월1일자로 경기신문에서 변경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경인일보의 ‘경(京)’은 경기도를, ‘인(仁)’은 인천시를 뜻한다.

제호 그대로 풀어보면 경기와 인천지역을 취재 권역으로 삼고 날마다 독자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이다. 경인일보는 1982년 2월26일자 사고(社告)를 통해 제호 변경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도권 지역이라는 특수성과 경기도와 인천직할시를 대상으로 취재망을 펴야 하는 현실성이 있고 보면 이번 제호를 바꾸어야 하는 이유의 한 가닥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뜻에서 앞으로 펼쳐질 경인일보는 경기도가 기호(畿湖)의 본적지로 역사의 맥락에서 개발을 구도해 보는 민족사의 지침이 제시돼야 하겠으며 인천직할시는 개항 100년에 접어든 국제도시로 세기사(世紀史)적인 문화와 경제를 현실로 수렴하면서 전향적인 미래상을 발진(發進)하는 새로운 인천상(仁川像)으로 부각 시켜나가는데 제작의 초점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제호 변경의 표면적 이유는 1981년 7월1일 이뤄진 인천시의 직할시(현 광역시) 승격에 있다. 무엇보다 경기도에 속해 있던 인천시가 광역시로 분리되면서, 그에 따른 신문 제호의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에서 분리되고 1년도 안 돼 제호를 바꿔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인천과 같은 시기 경상북도에서 분리된 대구시에 있는 대구매일신문(현 매일신문)은 왜 경인일보와 같은 방식으로 신문 이름을 변경하지 않았을까.

앞서 인용한 제호 변경 사고에 나왔듯이 ‘수도권의 특수성’을 살펴야 한다. 인천은 경기도청 소재지인 수원과 함께 경인지역의 중심 도시였다.

인천은 일찍이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수원과 그 일대는 1960~1970년대 급격한 인구 유입과 함께 대대적인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인천과 수원(경기)은 도시의 궤적과 미래상이 달랐고, 문화적 차이도 클 수밖에 없었다.

수도권의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경인일보는 1980년대 타 지역 신문과 달리 제호에 경기, 인천을 모두 표기했다. 인천, 경기지역에서 각각 독자적인 보도·제작 시스템을 가동하면서도 ‘수도권 주민’으로서 인천·경기의 통합을 도모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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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는 1945년 창간 이후 늘 향토지(鄕土誌)를 표방했다. 수도권 각 지역의 소식을 신속하게 취재·보도했다. 또 해방 후 1980년대까지는 계몽지로서, 문화 창달 기관으로서의 기능도 담당했다. 경인일보의 전신으로 1973년 9월 출범한 경기신문은 ‘경기도의 성장’ 과정에서 애향심 고취를 목적으로 했다.

신문은 창간 사설에서 “경기신문이 직면한 보다 다급한 문제 중의 하나는 350만 경기도민에게 애향심을 주입하고 환기시키는 일이라고 본다. 고향은 있되 향토가 없는 무적자들에게 자기를 길러준 향토의 고마움과 영예로움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일이 그것이다”고 적었다.

경기신문을 이룬 3개 뿌리인 경기매일신문, 연합신문(인천신문), 경기일보는 모두 인천에 본사를 둔 일간지였다. 1960년대 이들 3개 일간지는 자사를 홍보하는 광고에서 ‘경기도민 대변지’ 등과 같은 문구를 썼다. 인천에 본거지를 두고 있지만 인천뿐 아니라 경기도 전역의 독자를 대상으로 신문을 제작한 것이다.

이들 신문이 통합된 경기신문은 도청사가 있는 수원에 본사를 두고, 도 전역에 주재 기자를 보냈다. 인천은 지사(支社), 분실(分室) 아닌 분사(分社)체계로 구축, 독립적인 취재 기능을 갖게 했다.

경인일보의 원뿌리인 대중일보(1945년)의 제호는 취재·배포 권역이 아닌 ‘지향성’을 담았다.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신문 이름이었다. 제호의 ‘대중’은 ‘독자 중심 주의’를 표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중일보는 인천을 기반으로 ‘서울 뉴스’와 ‘국제 정세’를 보도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했다. 해방공간의 신문 독자들은 대중일보라는 여과지를 거친 뉴스를 읽으며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했다.

경인일보 70년의 제호 변천 과정을 최근부터 거꾸로 훑었다. 경인일보와 대중일보 사이, 해방 후 수도권 지역 신문의 변화상이 놓여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해방의 환희, 분단의 아픔, 펜대 꺾인 기자의 분노, 문화 창달자로서의 자부심, 계도지를 자임한 당당함, 신문 사전 검열의 굴욕, 지역 발전 동반자로서 힘찬 발걸음, 고발자로서의 결기, 생존을 위한 언론사의 이율배반, 기록자로서의 결연함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일보에서 시작한 경인일보는 아직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인 역사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