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더불어 의사소통·부적응 문제 어려운점 꼽아
러시아 사할린과 한국의 표준시간은 꼭 1시간 차이. 그러나 사할린 한인 2세(1세의 자녀 중 1945년 8월 15일 이후 출생자)인 장태호(65) 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대 교수는 “사할린 한인과 한국인간 언어·문화적 시간 차는 50년”이라고 말했다.
광복을 맞은 조국의 배는 수십 년 간 닿지 않았고 사할린의 한국 시계는 1940년대에 멈췄다. 해방 후 러시아와 동맹관계에 있던 북한의 문화와 교육이 유입된 것도 사할린 한인과 고국 간의 문화적 시간 차를 더욱 벌려놨다.
수십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사할린 한인들은 2000년대가 아닌 1940년대에 서 있었다. 이들이 말을 건네면 한국인 이웃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50년 만에 귀향한 사할린 섬의 한인들은 고국에서도 이웃들과 섞이지 못한 채 고립된 ‘섬’이 됐다.
■ 어울리지 못하는 ‘이웃’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는 사할린 한인 450여명이 살고 있다. 2007년 귀국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동포들의 ‘따가운 시선’은 8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 편에 남아 있다. 5일 오후 논현동 달맞이마을 쉼터에서 만난 진영자(77·여)씨는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면서도 ‘한국 사람’들의 차가운 눈빛을 잊지 못했다.
“우리가 원해서 사할린에 살게 된 것도 아니고, 고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는데, 사람들은 ‘왜 왔냐’는 식으로 안 좋게 봤다”며 “러시아에서 차별받는 것은 다른 민족이니까 견딜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 같은 민족에게서 받은 차별은 러시아에서보다 더 힘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반면 한국 이웃들은 “차별받는 것은 우리”라고 하소연했다. 이날 양주 회천4동에서 만난 한 할머니(72)는 “아픈 역사야 잘 알지만 우리는 조국 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라며 “잘 지내려고야 하지만, 솔직히 같은 이웃인데 사할린 한인들에게만 지원이 집중되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할린 동포의 거주지를 ‘그들만의 세상’이라고 부르며, 아예 무관심한 이웃도 있었다. 사할린 동포들이 모여 사는 안산 고향마을 바로 옆 아파트에서 만난 김모(37·여)씨는 “사할린 어르신들이 우리 아파트 상가에도 자주 오고 산책도 하시는데 별로 마주칠 일이 없으니 신경을 안 쓴다”고 말했다.
인천 남동사할린센터 신동식 노인회장은 “(사할린 한인들과 한국 이웃들 간) 서로 적대적인 감정은 없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많고 다른 문화에서 살았던 기간이 길다 보니 가까워지기가 쉽지는 않다”고 했다.
■ 고국에 와서도 말·문화 다른 ‘이방인’
올해 초 한국세계지역학회의 ‘세계지역연구논총’에 실린 전남대 임채완 교수·이소영 박사의 논문 ‘영주귀국 사할린 한인의 생활환경과 정책적 욕구’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전국 영주귀국 동포 2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귀국한 한인들은 한국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건강·의료문제(36.1%)와 더불어 의사소통 및 문화 부적응(33.2%)을 꼽았다.
2000년에 안산 고향마을로 영주귀국한 장일삼(83) 할아버지는 “북한 말투가 섞여있다보니 한국인들이 깜짝 놀라더라”며 “몇 번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말을 하기가 꺼려지는데, 거기에 러시아말을 섞어 쓰기 때문에 대부분 동포들은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이러한 점은 상당수 사할린 한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동떨어지는 데도 한몫을 한다. 설문조사에서 수도권에 사는 한인들 중 지역 주민과의 모임에 참여하는 경우는 50.6%였다.
나머지 49.4%는 참여하지 않고 있었는데 정보가 부족했거나(39.6%),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37.4%) 외에 언어·문화적 이질감 등이 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환기·정운·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