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익숙한 우리글 속 낯선매력
배희열 작가 ‘손글씨 예찬’
주택 건축·컴퓨터 폰트 등
‘한글의 미’ 삶에 스며들어


“야, 네가 쓴 글씨는 팔아도 되겠다.”

매일 읽고 쓰던 한글이 캘리그라피 작가 배희열(30)씨에게 ‘아름다움’이 된 것은 꼭 10년 전 일이다. 군에 막 입대했을 무렵 그가 쓴 글씨를 본 조교가 던진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글씨를 특이하게 쓴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다. “글씨를 그림처럼 판다고? 한 번 해볼까?” 제대 후 커피 한 잔에, 영화 표 한 장에 그의 글씨가 아름답다는 이들에게 ‘한글’을 선물했다. 캘리그라피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취미는 머지않아 직업이 됐다.

초성과 중성, 종성이 만나 하나의 글자를 이루는 한글은 영어 등 단순히 정해진 글자를 나열하는 다른 문자보다 색다르게 변형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여지가 많다는 게 배씨가 글자를 쓰고 또 쓰며 느낀 한글의 매력이다.

‘달’이라는 글자를 쓸 때 ㄷ은 더 작게, ㅏ와 ㄹ은 더 크게 쓰는 등 크기와 획의 굵기, 길이, 글자 사이의 간격, 기울이는 정도에 따라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한글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쓰는 이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새겨 넣기도 한결 쉬운 문자라고도 했다.

예를 들면 ‘길’이라는 글자를 쓸 때 ㄱ과 ㅣ는 아주 작게 쓰는 대신 받침 ㄹ을 길게 흘려 쓰는 것으로 먼 길을 표현하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도, 배씨가 생각하는 ‘우리 글’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눈과 손에 자연스럽게 배어 들어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읽고 쓰는 한글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때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매일 쓰는 글씨를 새롭게 바꾸는 것은 곧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미처 몰랐던 면을 찾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배씨는 “캘리그라피를 처음 배우는 이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는 자신의 이름과 옆 사람의 이름을 차례로 써보라고 한 후 이를 서로 바꿔서 보라고 한다. 남의 글씨로 쓰인 내 이름을 볼 때 느껴지는 신선한 충격이 있다”며 “천편일률적인 글자를 타이핑하는게 일상화된 지금 늘 읽고 쓰는 ‘우리 글’을 낯설게 보는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글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취미로 캘리그라피를 배우며 일상 속 작은 예술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한글 모양을 본떠 집을 짓기도 한다. 한글을 좀 더 예쁘고 개성 있게 표현하기 위한 컴퓨터 폰트 시장의 열기는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장지훈 경기대 서예문자예술학과장은 “문자 ‘한글’이 갖는 매력은 자·모음의 굵기나 길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쉽게 담을 수 있는 ‘표정’을 가진 문자라는 것”이라며 “익숙한 도구가 가진 표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부분에 주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캘리그라피/배희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