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포천막걸리’ 등 다양한 글자체
최소 석달 작업… 등록신청 매년 늘어
지자체 등 관심 ‘업체 간 경쟁 불붙어’
‘오이, 딸기마카롱, 하얀고양이, 포천막걸리, 외계인설명서…’.
언뜻 공통점을 쉬이 찾기 어려운 이 단어들의 정체는 컴퓨터에서 쓸 수 있는 한글 서체의 이름이다. 손 글씨보다 타이핑을 통해 한글을 읽고 쓰는 게 일상화된 지금, 컴퓨터 안에서 사람들은 굴림과 명조, 고딕을 넘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 나섰다.
한글 서체는 초성과 중성, 종성 등 최소 2천350자의 문자를 디자인해야 하나의 글자체가 된다. 어떤 글자체를 만들지 큰 틀에서 콘셉트를 잡고 글자 하나하나를 디자인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최소 3개월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터넷 용어들을 모두 담아내려면 5배에 달하는 1만1천172자를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까지도 걸리는 기나긴 작업이 필요하다.
보통 사회적 흐름에 따라 유행하는 서체의 스타일도 달라진다는 게 폰트 개발자들의 말이다. 싸이월드 등 온라인에서 처음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된 초창기 SNS 시대에는 각종 이모티콘이 첨부된 화려한 장식 폰트, 움직이는 폰트 등이 인기를 끌었다.
글자체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일에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며 폰트에 모든 장식적 요소가 집약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복고 바람의 영향으로 큼직하고 투박하지만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폰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면, 최근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친숙한 느낌의 글씨체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글의 ‘아름다움’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글 서체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05년 7월부터 글자체도 디자인 등록을 통해 사용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글 서체의 디자인 등록 신청도 점점 늘고 있는데, 2005년에 출원한 서체는 단 3개뿐이었지만 1년 만인 2006년엔 13배가 넘는 41개가 출원됐다.
지난해 출원한 서체는 모두 64개다. 이날 현재 디자인이 등록돼 권리가 유효한 한글 서체는 347개다. 여기에는 소비자에게 친숙함과 신선함을 함께 각인시키고 싶은 기업들이 한 몫을 했다.
현재 등록된 서체 중 기업이 출원한 서체는 50개다. 주민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지역을 홍보하려는 지방자치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양평군이 2009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서체를 등록한 데 이어 부산시가 2012년, 제주도가 2013년에 각각 서체를 등록했다.
기업과 지자체 등이 직접 고유 서체 개발에 팔을 걷어붙인 가운데 글꼴을 개발하는 전문 업체들간 경쟁은 더욱 불붙는 추세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하나의 한글 서체가 탄생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글자체 역시 돈을 내고 이용해야 하는 재산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보편화되지 않아, 서체 시장은 그 수요에 비해 그동안 시장이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한 폰트 개발자는 “그동안은 기업이나 출판사 등 글자체가 필요한 곳과 전문 개발업체 간 1대1 형태로 제작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며 “한글의 아름다움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보다 다양하게 표현되려면 한글 글자체 역시 하나의 재산이라는 인식 하에 아름다운 우리 글을 사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