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자
지희킴 작가. /인천아트플랫폼 제공

“버려진 책 활용 내 작품과 비슷”
개항장때 창고로 만든 창작 공간
시민들 사랑 받는 명소로 재탄생


인천아트플랫폼 6기 입주작가로 활동 중인 지희킴(32·본명 김지희) 작가. 그의 작업실 E동 8호실 절반은 도서관에서 한 때 폐기될 운명이었던 300여 권의 책이 담긴 상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는 캔버스가 아닌 책에 그림을 그린다. 버려진 책을 펼쳐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붙이는 방식의 작업을 주로 한다.

자신의 본명이 너무 흔해 수년 전부터 영어식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는 그는 “버려진 창고 건물이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인천의 명소가 된 것처럼 버려진 책을 활용한 내 작업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1930~40년대 개항장 일대에 지어진 옛 창고 건물을 재활용해 지난 2009년 새롭게 만들어진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다.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자
지희킴 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자’. /작가 제공

그는 버려진 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 자신의 작업과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인천과의 인연은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초·중·고교와 대학·대학원까지 모두 서울에서 마쳤다. 지난해 말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선정을 위한 심층인터뷰에 참여한 것이 그의 첫 인천 방문이었고 입주작가로 선정 이후 7개월째 인천을 들락거리며 인천을 배워가고 있다.

길 하나 건너면 중국 거리가 나타나고 또 길을 건너면 일본의 모습이 보이는 이 개항장 일대의 매력적인 경험들이 자신의 작업에 녹아들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버려진 책을 작업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겨울 영국으로 떠났던 유학 생활부터다.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자
지희킴 作 ‘양치는 목동’. /작가 제공

“유학 초기 도서관에 머무르는 일이 많았어요.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폐기하려고 모아 놓은 책을 보게 됐는데, 그는 곧 버려질 운명을 앞둔 책들이 제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작가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한 자신의 처지가 언제 폐기될지 모르는 책들의 운명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내 작업을 통해 버려지는 것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인천아트플랫폼을 재활용해 시민들과 예술가를 위해 돌려줬던 것처럼, 인천이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올바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