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와이드_아줌마24시8

어려워진 형편에 ‘직업전선’ 뛰어들어
어느새 성취감 느껴 인생 전환점으로
집집마다 돌며 정수기점검 고된 하루
귀가후 밀린 가사 “자식 잘되는 게 꿈”


안산에 사는 ‘아줌마’ 황순희(55)씨의 하루 속엔 엄마와 아내, 직장인이 뒤섞여 있었다.

지난 19일 오전 7시께 알람소리에 눈을 뜬 황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다 큰 딸(27)에게 과일 한 조각이라도 챙겨 먹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자녀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아침 식사를 거르는 날이 늘었지만, 빈속으로 내보내는 것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간단한 아침 식사후 아이들과 남편의 출근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그제서야 황씨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예약된 정수기 점검 일정 탓에 출근 채비를 서둘렀다. 오전 9시께 정작 황 씨는 빈속으로 집을 나섰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한 정수기 점검일은 가정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진 황씨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전업주부였던 황씨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한때 집안일을 하거나 취미로 운동을 하곤 했던 오전시간. 이제 황씨는 안산시 상록구 일대 가정집이나 사무실을 돌며 정수기를 점검하면서 보낸다.

황씨는 체감상 3㎏ 정도 되는 맥가이버식 가방을 손에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름엔 땀으로 속옷까지 흠뻑 젖고 겨울엔 건조해진 손이 부르트곤 했다. 황씨의 손마디는 종종 걸음한 지난 세월만큼이나 굵고 거칠어져 있다.

황씨는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어서 두렵고 서글프기도 했지만, 막상 일을 하면서 ○○엄마나 ○○아내가 아닌 황순희라는 이름을 되찾게 됐다”며 “전업주부로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감과 성취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오후 2시께 안산시 단원구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황씨와 같이 ‘아줌마’로 불리는 여성들이 앉아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줌마들은 아줌마의 원동력에 대해 묻자 “젊은 시절에는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힘을 냈다면 아이가 하나둘 품을 떠나면서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며 “아줌마는 억척스럽고 용감하다고 말하지만, 엄마이자 아내로서 발현되는 열정의 다른 이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후 8시께 황씨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황씨를 반기는 것은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과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었다. 주말에 빨래, 걸레질 등을 몰아한다 해도 자고 나면 쌓이는 먼지는 그냥 봐 넘길 수가 없다.

아랫집 눈치가 보이지만 얼른 청소기를 돌리고 본다. 그제서야 남편과 딸이 집에 들어와 고요했던 집안에 활기가 돈다. 가족에게 던진 그녀의 첫 마디는 “밥 먹었어?”였다.

황씨의 꿈은 ‘딸과 아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그녀 자신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꿈을 먼저 생각하는 황씨에게 원동력은 ‘가족’이었다. 그렇게 아줌마 황씨의 하루는 저물어갔다.

/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