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자와 문화활동가 연결이 협의회 역할
네트워크 엮어 정보제공… 매년 시상식도
기업들 경영전략 따라 자발적인 지원 눈길
(주)하쿠주는 클래식 전용홀 13년째 운영
특색있는 운영 방식… 중소기업 참여 활발
메세나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를 통해 비즈니스 영역이 넓어지고, 사업내용도 문화 예술적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마키코 우치쿠라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서 공익사단법인 기업메세나협의회가 주최하는 포럼이 열렸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협의회는 ‘창조열도(Creative Archipelago)’라는 콘셉트의 문화운동을 계획하고, 이에 참여할 문화기관과 기업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날 포럼에는 100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8개 단체가 음악제, 시민참여형 축제 등 문화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협의회는 ‘창조열도’를 통해 세계 각국과 다양한 문화를 교류하며 문화 다양성 사회를 만들고, 대내적으로는 청년층과 노년층의 화합을 이룬다는 과제를 설정했다. 무엇보다 전국에 걸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올림픽이 끝난 후로도 이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네오 카토 대표이사는 “올림픽을 기회삼아 문화운동을 전개하지만, 일시적인 행사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의 영역과 기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지속적이고 전국적인 활동을 이어가려면,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업과 문화단체, 협의회 등 각 기관들은 아직 5년이나 남은 올림픽에서의 문화활동을 지금부터,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 일본 기업메세나협의회의 역할
카토 대표는 협의회 대표로 오기 전 ‘아사히 맥주’에서 20년 동안 일했다. 메세나 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요코하마재단, 도쿄재단 등에서도 고문으로 활동하다 전임회장의 추천으로 기업메세나협의회로 자리를 옮겼다. 메세나에 대한 기업의 입장과 문화단체의 입장을 두루 전해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협회의 역할은 ‘기부자와 문화활동가를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 설립 이후 협의회는 기업, 단체, 개인 등 170개 회원을 모집해 활동하고 있다. 협의회 기금은 따로 조성돼 있지 않고, 협의회 운영은 연회비와 별도의 컨설팅을 통해 얻는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기업에서 문화활동단체에 전해지는 지원금은 협의회를 거치지 않는다. 협의회는 메세나활동을 하려는 기업과 문화활동지원금이 필요한 단체를 연결해주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메세나활동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 1991년부터 매년 ‘메세나어워드’를 수여해 기업의 주목할 만한 메세나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협의회가 발간한 ‘2014 메세나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내에서 기업과 단체의 메세나를 통해 이루어진 문화활동은 3천 건이 넘는다. 활동금액은 956억2천697만엔(약9천억원)에 달한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목적으로는 응답한 551개 사 중 280개사가 ‘예술, 문화적 기여를 위해’라고 답했다.
193개사는 ‘문화예술보다는 회사의 과제해결 등을 위해’라고 대답했다.(복수응답 가능) 일본에서 이처럼 메세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1990년무렵이다.
카토 대표는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성장하기 이전부터 일본 기업들의 문화기부는 활발했지만 90년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협의회도 이때 생겼다”며 “당시에는 기업들이 메세나 예산을 대폭 늘려 배정해놓고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앞다퉈 문화예술분야에 투자한 것은 경영전략에 따른 자발적 선택이었다.
카토 대표는 “일본 기업들은 메세나가 기업의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기업에 도움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따져보고 판단한다”며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메세나를 통해 높일 수 있고 이것이 기업에 이익이 된다면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덕분에 불황이 와도 메세나의 총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물론 영향은 있지만 큰 흐름으로 봐서는 긴 불황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았다”며 “기업별로는 지원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새로 활동을 시작하는 신생 기업이 꾸준히 있다”고 말했다.
# 재계 전반에 자리잡은 일본 메세나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메세나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건강제품전문업체인 ‘(주)하쿠주’는 직원수가 200여명인 중소기업이지만, 도교 본사에서 클래식 전용홀을 운영하고 있다. 8층짜리 본사건물 중 7층이 ‘Hakuju Hall’이다.
300석 규모의 이 공연장에서는 연간 30~60차례 기획 공연을 연다. 벽면은 오선지를 형상화해 디자인했고, 객석 의자 중 일부는 리클라이너로 보다 편안한 자세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운영에 드는 비용은 연간 100억엔, 전체 매출의 0.5~1%에 해당한다. 창업주나 CEO가 특별히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쿠주홀 운영을 13년째 계속하고 있다.
비서실장 마키코 우치쿠라 씨는 “음식과 운동, 정신의 삼위일체가 이루어져야 건강할 수 있다는 창업이념에 따라 정신의 여유를 찾아주는 음악당을 운영하게 된 것”이라며 “일본은 클래식음악 애호가가 많기 때문에 타깃층을 넓히고자 클래식 전용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음향의 보석상자’로 불리는 산토리홀(산토리社), 니켄 세케이社가 설립한 스미다 트리포니홀, NHK홀 등 도쿄에는 기업의 클래식 공연장이 여럿이다. 하쿠주홀은 규모나 예산 등에서 이들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러나 (주)하쿠주는 보여주기보다는 내실있는 운영을 통해 하쿠주홀만의 특색을 가꾸고 있다.
우치쿠라씨는 “자사의 제품인 리클라이너를 객석에 배치하거나, 공연 도중에도 자유롭게 이야기하거나 잠을 잘 수 있는 공연을 진행하거나, 건강에 이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기업의 본업과 연결해 운영방향을 정한다”며 “홀을 만든 후 결과적으로 보면, 고객과 더 가까이 자주 만날 수 있게 됐다”고 효과를 전했다.
기업메세나협의회 카토 대표와 (주)하쿠주의 우치쿠라실장에게 똑같이, ‘메세나는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둘은 ‘인간의 일이니까’라는 같은 대답을 했다.
카토 대표는 “문화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에 메세나가 있는 것”이라며 “기업의 메세나는 가난한 문화계를 위한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다”고 말했다. 우치쿠라 실장은 “메세나의 효과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 비즈니스 영역이 넓어지고, 사업내용도 문화 예술적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