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중기획 옹진 섬  연평도 포격10
2010년 북한의 포격으로 폐허처럼 변했던 당시의 주택 모습.

백령·대청·소청·연평·우도 NLL두고 北 대치
4명 목숨 앗아간 ‘연평도 포격 도발’ 내달 5년
상처에 새살 돋듯 주민 심리적 평온 회복불구
마을 곳곳 피폭 흔적처럼 일부 불안감 하소연
“아직도 큰소리 나면 그때 떠올라 가슴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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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일컫는 서해5도는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사이로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해5도를 둘러싼 분쟁과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남한과 북한의 교전·대치 상황의 대부분은 서해5도의 바다·섬이 배경이 됐다.

그중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북한이 남한의 영토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군인과 민간인 등 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마을 한가운데 떨어진 포탄으로 조용하던 섬마을 연평도는 순식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폐허로 변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발한 지 다음 달이면 5년을 맞는다. 5년이란 세월이 흐른 연평도는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포격의 흔적처럼, 일부 주민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24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리에 위치한 안보교육장. 주말을 맞아 관광객들이 교육장을 찾았다.

안보교육장은 북한의 포격 2주기를 맞아 지난 2012년 11월에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한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교육관 옆에는 연평도 폭격으로 피폭됐던 주택 3동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붕은 내려 앉았고, 주택 내부는 폭발의 영향으로 모두 검게 타버렸다. 냄비와 같은 주방용품, 가전 등은 형체를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대구에서 안보교육장을 보기 위해 연평도를 찾았다는 지상구(55) 씨는 “연평도 포격에 대해 뉴스를 통해서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까 포격 당시에 얼마나 처참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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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평화공원에 설치된 위령탑. 위령탑은 연평도 포격으로 목숨을 잃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어 “연평도가 얼마나 북한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지도 이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평화와 통일의 중요성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성구(48) 씨는 “포격을 맞은 부분을 보존해 놓은 것이 인상깊다”며 “교육관에 북한의 무기 등을 더욱 자세히 전시해 놓으면 교육적으로 더욱 효과가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평도에는 안보교육관 외에도 포격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또한 포격 이후 촬영된 포격현장과 복구공사의 진행과정 등이 각 가정의 벽면에 설치돼 있다.

북한 황해도 지역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연평도 평화공원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연평도 포격 위령탑, 연평해전 추모비가 설치돼 있다. 연평도 포격과 연평해전에 대한 영상을 상영하는 미디어홍보관과 국군의 군수장비도 전시되고 있어, 이 곳이 군사적 분쟁이 발생했던 지역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포격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연평도이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주민은 평온을 되찾았다. 포격을 맞아 폐허였던 건물이 새로 지어진 것처럼 주민들의 심리상태도 포격의 불안감을 많이 떨쳐냈다.

연평중고등학교 송영희 교무부장은 지난 2012년 3월 이 곳으로 전근을 왔다. 포격이 발생한 지 1년 이상이 지났을 때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 곳 학생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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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연평면 연평리에 위치한 안보교육관을 관광객이 둘러보고 있다. 안보교육관에는 연평도 포격과 관련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교육관 옆에는 포격으로 피폭됐던 건물 3동을 포격 당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눈물을 보이는 학생이 있었고, 휴대전화를 쓰지 못하게 하면 또 다시 포격이나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부모님과 연락해야 된다며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진행된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전체 학생의 10% 이상이 ‘자살충동 고위험군’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송 교무부장은 “당시만 해도 포격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으며, 매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2014년에 진행된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고위험군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학생들의 행동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전보다 밝아졌으며, 휴대전화 사용 등에 대해 자체적인 규율을 만들어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수업에 임하는 자세도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송 부장은 “상처가 난 뒤 안에 있던 새살이 돋듯 학생들이 큰 사건을 겪고 나니 이전보다 더욱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학생들 뿐 아니다. 연평도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의 불안함은 많이 없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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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 공사 이후 깔끔한 모습으로 정돈된 모습. 주택이 정비된 것처럼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평온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일부는 아직도 포격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다.

방순덕(81·여) 씨는 “포격 이후 찜질방과 양주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연평도로 돌아왔을 때에도 또 포격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며 “지금은 훈련이나 어떤 상황이 있으면 방송을 통해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4월부터 연평보건지소에서 일하고 있는 박성윤 공중보건의는 “보건지소에 오시는 분들 중 수면장애를 호소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많은 편은 아니다”며 “병원에서 진료받으시는 분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곳을 찾는 분들만 보면 포격이 발생했던 곳이라는 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5년의 시간에도 일부에서는 아직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소연했다. 연평도라는 지역의 특성상 군사훈련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의 갈등이 고조되면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다시 엄습하는 것이다.

지난 8월 발생한 북한의 연천 포격에도 연평도 주민들은 대피소로 몸을 피해야 했다. 유선녀(76·여) 씨는 “포격 이후 마음 놓고 살아가기 힘들게 됐다”며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갖고 산다. 아직도 큰 소리가 나면 포격 때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했다.

남북 분단의 아픔과 그로 인한 상처들을 오롯이 품고 있는 서해5도. 섬 주민들은 반복되는 대립과 긴장이 완전히 해소 될 수 있는 통일의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글 = 정운기자 jw33@kyeongin.com · 사진 =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