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연평해전 후 2002·2009·2010년 교전
백령도 앞바다 천안함 침몰로 장병 46명 수장
北, 연평도 포격도발 민간인 등 4명 목숨잃어
평택 2함대 등지 위령탑·전시관 건립해 추모
‘한반도 화약고’ ‘분쟁의 바다’ 수식어 붙기도

한국 전쟁 이후 벌어진 남북한 첫 해상 교전은 연평도 앞바다에서 발생했으며, 이후에도 수 차례의 교전이 서해 5도 바다에서 벌어졌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해군 초계함이 침몰했고, 연평도에는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떨어졌다. 서해 5도에서 교전 등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이 수 십 명이다.
이러한 서해 5도의 상황은 서해 5도의 지리적 특성과 맞물려 있다. 1945년까지 서해 5도는 황해도 장연군(백령도·대청도·소청도)과 벽성군(연평도)에 속해 있었다.
1945년 9월에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점령한 후 황해도 옹진군이 경기도에 속하게 되면서, 38선 남쪽에 위치한 서해 5도가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됐다.
이후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1953년 이뤄진 휴전협정의 결과 옹진군의 육지 부문인 옹진반도는 북한지역이 되었으나, 서해 5도는 군사분계선 이남에 남아 있게 됐다.

■ 서해 교전
분단 이후 최근 20 여년 간 발생한 해상 교전은 대부분 서해 5도를 배경으로 이뤄졌다.
1999년 6월 15일 북한군 경비정 4척이 어선 20척과 함께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해상을 넘어왔다. 이에 우리 나라 해군은 참수리급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해 해군 교전 수칙에 따라 경고 방송을 한 뒤 상대 선박을 선체로 들이받는 ‘밀어내기’를 실행했다.
북한군 경비정은 25㎜ 기관포를 우리 군을 향해 발사하는 등 선제공격을 감행했고 해군은 초계함의 76㎜ 함포와 고속정의 40㎜ 기관포로 응사했다. 교전 결과 북한군은 어뢰정 1척이 침몰했으며, 경비정 1척은 반파돼 퇴각했다.
이를 ‘제 1차 연평해전’으로 부른다. 교전에서 우리 군은 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북한군은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서해에서의 교전은 3년 뒤에 또다시 발생했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기인 2002년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또 다시 남북한 간 교전이 벌어졌다.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연평도 서쪽 22㎞ 해상에서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퇴각을 요구하는 해군 함정인 ‘참수리 357호’를 향해 기습적으로 85㎜ 함포사격을 하면서 교전이 시작됐다. 이후 교전은 30분 가량 진행됐으며, 양측 모두가 피해를 입었다.
북한군의 선제 공격을 당한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는 교전 후 예인 도중 침몰했으며, 정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북한군의 등산곶 684호도 해군의 반격으로 전투 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예인됐다. 북한군은 해군 13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 당했다.
2009년에는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과의 교전이 또 다시 발생했다. 2009년 11월 10일 해군과 북한군 해군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북한군 해군 경비정이 대청도 동쪽 NLL을 침범했고, 우리 군은 경고방송에 이어 경고사격을 진행했다.
이에 북한군이 우리 경비함정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고, 우리 군이 즉각 대응사격을 해 북한군 경비정의 함포와 기관포를 파괴시켰다. 북한군은 경비정이 반파된 상태로 퇴각했다. 이번 교전으로 우리 군은 선체가 일부 손상됐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연평도에는 서해교전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시설이 건립됐다. 연평도 당섬선착장 인근에 ‘제 1연평해전 전승비’와 연평도 평화공원에 있는 ‘제 2연평해전 추모비’ 등이다.

■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대청해전이 발생한 지 4개월 여 지난 시점에서 백령도 앞바다에서 한국 전쟁 이후 가장 많은 군인이 희생된 사건이 발생했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침몰 당시 104명의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인천해양경찰서 501함이 사고 현장에 도착해 구조활동을 진행했다. 58명이 구조됐으며, 40명은 함미와 함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6명은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
천안함은 두 동강이 난 채 바다로 가라앉았다. 사고 20일 만인 4월 15일 함미가 인양됐으며, 4월 24일 함수가 인양됐다.
천안함 침몰로 희생된 군 장병은 모두 46명이다. 이는 해군 역사에서 지난 1974년 통영 앞바다에서 해군 수송정 침몰사고(159명 순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다.
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했으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평택 해군 2함대에 있는 천안함 전시관에는 인양한 선체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에서는 천안함 선체를 올린 선거대, 선체에서 떨어져 나온 부품을 전시한 대형유물전시장, 46개의 조각을 태극무늬로 조합한 천안함 46용사 추모 조형물 등이 들어섰다.
천안함 전시시설과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4층 전망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교육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 만인 2010년 11월 23일에는 북한군이 우리의 영토에 포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북한이 남한의 영토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군인과 민간인 등 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사건 이후 연평도 주민들은 뭍으로 몸을 피했으며 인천시 중구의 찜질방에서 한 동안 생활해야 했다.
현재는 포격으로 피폭된 지역에 대한 복구공사가 완료된 상태이지만, 일부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연평도와 백령도, 평택에 있는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백령도에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이 건립됐으며, 평택에는 천안함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 연평도에는 ‘연평도 포격 위령탑’이 건립됐다.
/글 = 정운기자 jw@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