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갈기는 커녕 처음 안는 것부터 막막
알 길 없는 아기 마음… 30분도 안돼 식은땀
‘끝모를 밀당’ 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혼잣말
떠날때 쯤 핀 웃음꽃 “예쁘니까 참지” 공감
“육아는 자신을 내려놓는 것과 같아요.”
예쁘고 귀여운 인형과 함께 노는 인형 놀이지만 결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인형 놀이. 육아의 백 분의 일도 채 맛보지 못한 미혼 여기자가 느낀 육아의 한 단면이었다.
화성에 사는 곽민혁(생후 8개월)군과의 하루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기자에게는 선배인 권순정(35)기자의 품에서 아이를 넘겨받아 무릎에 앉힌 순간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이 됐다. 평소 엄마와 아빠 품에서 느꼈을 편안함과 안락함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내 생각일 뿐.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는 그저 울먹거렸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도 봤지만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 낯을 가리지 않는다던 아이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자 30여 분 만에 등에 땀이 차는 게 느껴졌다. 자리는 좌불안석이었고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3월생인 아이는 어른이 없으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하지만 육아를 해 본 경험이 없는 미혼자 역시 어른이지만 서툰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변을 본 아이의 기저귀가 불룩하게 차올랐지만 어떻게 옷을 벗기고 천 기저귀를 풀러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권 기자는 처음부터 타고나는 엄마는 없다고 말했다. 권 기자 역시 권 기자의 엄마, 그 엄마도 본인의 엄마를 통해 엄마가 되는 방법을 알음알음으로 익혔을 터였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마저 돌이 채 안 된 아이에게는 난제였다. 힘차게 물병은 빨지만, 물병을 기울여야 물이 나온다는 사실은 8개월 된 아이가 깨닫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 곁에서 물병을 기울여주지만 한 모금 마시곤 이내 물병을 밀었다가 잡고 흔드는 등 ‘밀당’을 되풀이했다.
이유식을 먹고 싶은지 물이 마시고 싶은지 아니면 배가 부른 건지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아이의 속은 알 수 없었다. 엄마들의 혼잣말을 어느 순간 따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예쁘고 귀엽지만, 말이 안 통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형. 24시간 내내 아이와 생활하는 엄마에게 이따금 찾아온다는 산후 우울증은 극단적인 충동을 일으킬 만큼 위험하다. 아이가 생기기 전 직장 생활 등을 하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냈을 엄마들이 느낄 무력감과 공허함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권 기자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가끔 아이를 위해 자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 기자는 “24시간 육아라는 직장에 다니는 것과 같다”며 “말 못하는 아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엄마 본인의 욕구는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육아는 엄마만의 몫은 아니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일터에 나가는 것은 맞벌이 부부 모두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권 기자 역시 육아 휴직을 마치고 내년부터 복직할 예정이다. 앞으로 권 기자가 회사에 있을 동안이나 퇴근이 늦어질 경우 아이를 돌볼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권 기자와 같이 복직을 앞둔 맞벌이 부부에게 주어진 통과의례다. 만 1세 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나 시부모, 친부모 등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지만, 핏덩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한다. 시부모나 친부모에게 손을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에 대한 욕심이 나는 동시에 포기해야 할 것이 생긴다. 아이를 돌보면서 포기하게 된 것들을 묻자 권 기자는 “내 자유”라며 웃었다. 손이 많이 가는 천 기저귀부터 밤을 꼬박 새워가며 손수 만든 이유식까지 아이에게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까지 챙겨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엄마의 하루는 아이의 하루가 되고 마는 것이다.
숨넘어갈 듯 울던 아이가 기자가 떠날 때쯤 돼서야 감춰둔 웃음을 내보였다. 아이가 예쁘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가 예쁘니까 육아를 할 수 있다던 권 기자 말의 의미를 그제야 풀이해 본다. 하지만 고작 반나절 짜리 속성 육아가 끝나고 기자의 몸에는 여느 때보다 피곤함이 배인 하루였다.
/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