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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호평동 구석기유적 발굴 모습·흑연제 초크·흑요석제 뚜르개(사진 왼쪽부터). /경기문화재단 제공

흑연 덩어리·뚜르개 등 다수 출토
석제의자·불피운자리 작업장 추측
학술가치 인정 교과서 게재되기도


세계적인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Brian M. Fagan)은 그의 저서 ‘크로마뇽(2012)’에서 ‘빙하시대라는 혹독한 기후에서 네안데르탈인은 결국 멸종한 데에 반해 현생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바늘이 있었기에 가죽 조각들을 꿰어 만든 맞춤옷을 만들 수 있었고, 빙하시대라는 혹독한 기후에 적응할 수 있었다는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지금으로부터 3만 년 전, 한반도에 살던 현생 인류들도 맞춤옷을 지었을 것이라 추측되지만, 이를 입증할 뼈바늘은 아직까지 출토된 적이 없다. 그러나 후기 구석기시대 맞춤옷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유물이 출토됐는데, 이는 남양주 호평동 구석기 유적에서 발굴된 길이 5㎝의 흑연(黑鉛) 덩어리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손에 꼭 쥐기 알맞은 크기와 모양이면서 몸통의 가장자리 중심선을 따라 날이 서 있다. 이 날은 흑연 덩어리인 유물로 선을 긋는데 사용됐을 가능성을 짙게 해 준다.

아울러 이 흑연과 함께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됐을 폭 5㎜·길이 3~4㎝의 뚜르개가 여러 점 출토돼, 옷감을 꿰매는 행위가 그 곳에서 이뤄졌음을 확인케 해 준다.

남양주 호평동 구석기 유적에서는 이 외에도 다양한 돌감을 이용한 격지·돌날·좀돌날 제작이 이뤄졌는데, 특히 흑요석을 사용한 좀돌날 석기 제작이 특징적이다. 긁개·밀개·뚜르개·새기개·조합식도구 등 다양하고 새로운 종류의 흑요석제 석기가 출토됐다.

특히 석제의자로 볼 수 있는 대형 석재와 모닥불을 피웠던 흔적이 확인돼, 그곳에서 실제 작업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적의 연대는 탄소연대측정 등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3만 년에서 1만 5천 년 전 사이로 판명됐다.

이러한 학술적 가치가 인정돼 출토 유물 중 일부는 제7차 국정 국사교과서에 사진이 실렸고,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지점은 현장 보존됐다. 그리고 경기문화재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는 우리나라 구석기 발굴조사 보고서 중에서 가장 우수한 보고서라는 평가를 국내외에서 받고 있다.

남양주 구석기 유적을 통해 출토된 유물을 통해 지금부터 1만~3만 년 전 이전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다. 알맞은 높이와 형태의 돌의자에 앉아 흑연으로 재단한 옷감 조각들에 흑요석 뚜르개로 작은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연결해 맞춤옷을 만드는 구석기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구석기 유물을 단순한 돌조각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돌조각들은 멀고 먼 과거로의 여행을 도와주는 타임머신이기 때문이다.

경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