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 감독관과 독특한 사제관계
조선시대와선 하사배 통해 공음의식
축하연회·감사인사·공자사당 예올려
어사화 꽂고 허락된 3~5일 거리 행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들만의 시험이 아니다.
국가는 시험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 1년여 간 문제 출제를 주관하고, 기업은 수능 시험 당일 출근 시간을 1시간 가량 늦추기도 한다.
항공기는 수능 시험 당일 듣기평가 시간대 이·착륙이 금지되고, 수능 시험장 인근은 경적 소리 등을 울리는 행위도 할 수 없다.
우리 선조들에게 수능이라는 제도는 없었지만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科擧)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시험에 억눌렸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었을까. 시험에서의 해방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과거시험은 국가가 나랏일을 하기 위한 인재를 뽑는 절차였던 만큼 시험에 합격한 급제자들도 자유롭게 행동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급제자는 관례에 따라 준비된 일정을 따라야 했다.
과거시험은 고려왕조시대 광종 9년(958년)부터 시작해 조선왕조시대까지 이어진다.
왕은 과거 급제자(합격자)에게 홍패(붉은 종이에 쓴 합격증)를 하사하고, 연회를 열어 축하했다.
고려왕조시대에는 시험의 감독관인 지공거와 과거 급제자 사이에 ‘좌주-문생(座主-門生)’이라는 독특한 사제관계가 맺어졌다.
과거 급제자인 문생은 지공거인 좌주나 좌주의 부모를 찾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좌주의 집에서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중앙의 관료들이 하나의 학벌을 형성해 자신들의 권력과 조직을 활성화하는 폐단을 낳기도 한다.
조선시대엔 임금이 과거 급제자들에게 하사배(下賜盃)를 통해 술을 돌려 마시는 공음 의식이 있었다.
급제자들은 나이와 생일 순으로 앉아 한 잔의 술을 같이 나눠 마셨다.
이 의식은 임금과 신하로서의 결속, 동창 간의 결속 등을 다지는 자리였다.
과거 급제자는 근정전에서 방방의 또는 창방의라는 의식을 열고 호명됐다.
급제자의 이름을 부르는 방방관은 장원부터 성적 순서로 이름을 부르고, 이름이 불린 사람은 지정된 장소에 앉아 임금이 내린 어사화와 술, 음식 등을 받았다.
방방의 다음 날에는 조정에서 문과·무과 급제자들에게 은영연이라 하는 축하연회를 배풀었다.
조선시대의 의궤와 악보 등을 정리한 악학궤범에는 ‘은영연을 위해 악사 1명, 악공 10명, 여 기생 10명을 내려 보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은영연이 열린 다음날에는 문과·무과 급제자들이 모두 문과 장원의 집에 모여 궁궐에 들어가 국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급제자에게 은영연을 베풀고, 급제자들이 이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수 차례 나온다.
그 다음날에는 무과 장원의 집에 모여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 예를 올렸다.
과거 급제자들에게는 일종의 거리 행진도 3~5일 간 허락됐다.
조선 후기에 평생도(平生圖)라 하여 자신의 주요 일생의 주요 장면을 8폭의 병풍에 담는 것이 유행했는데 그 중 ‘삼일유가’라는 장면에 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림 속 행렬의 맨 앞 쪽부터 합격증서인 홍패를 든 사람, 악대와 광대 그리고 급제자가 어사화를 꽂은 채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신상윤기자 ss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