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간다는 딸의 말에 어머니가 통곡을 한다. 딸은 미움 속에 숨겨두었던 그리움을 토해낸다. 씨받이라도 해서 만주로 독립운동하러 간 남편의 역할을 대신해보려던 어머니는 영영 김 씨 집안 ‘작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래서 정작 제가 낳고도 돌보지 못한 딸이다.
어머니와 딸이 마주 선 무대를 관객들은 차마 보지 못하고 천장을 보며 눈물을 삼키거나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쳤다. 1세기 전의 우리 사회를 다룬 여느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장용휘(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연출가는 흔한 이야기로 흔치 않은 감동을 남기는 주특기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수원시립공연단은 창단 이후 두 번째 정기공연 ‘그 여자의 소설’을 지난 11~13일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선보였다. 엄인희 작가의 ‘작은할머니’가 원작이다. 장 감독은 통한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집요하게 끌어냈다. 등장인물들은 지독하게 착하다.
큰댁은 씨받이로 들어온 작은댁을 친자매처럼 살뜰히 보살핀다. 작은댁은 큰댁의 죽음이 부모를 잃은 것처럼 애통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김 씨 집안에는 숨긴다. 본처자리를 감히 넘보지 않기 때문이다. 늙어 노망이 나고서도 작은할머니를 괴롭히던 김 씨 할아버지도 결국은 착하다.
두 여자를 끝까지 책임질 줄 알았다. 할아버지 역할의 이남희는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다면적인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다. 표면적으로는 밉상스런 캐릭터지만 갈등하는 인물의 내면을 절절하게 또는 코믹하게 드러냈다.
작은댁을 연기한 이경의 연기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관객의 감정을 집중시켰다. 한없이 착하고 구구절절 슬픈 작은댁의 사연을 지루하지 않게 들려주었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