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151228_155717431
김환
소설의 등 뒤에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아무 것도 없게 쓰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래와 기원은 서사를 분명한 목적지에 이르는 길 위를 걸어가도록 손쉽게 강제한다.

안락한 강제성 안에서 서사는 쓰는 자의 오직 물리적일 뿐인 노력과 의지와 수고에 정확히 부합하는 줄거리만을 자신의 몸으로 가진다.

그러나, 그러므로, 그것으로 끝이다. 서사를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소설 안에서 서사를 정지시켜야 한다.

쓰는 자의 기억과 기대조차도 일말의 소환될 여지가 없이 정지된 서사는 쓴다는 행위, 쓰고 있다는 것, 그렇게 써 있다는 것 자체를 소설 요소의 가장 우위에 놓는다.

정지된 서사는 정지되어 있으므로 당도할 분명한 목적지를 갖지 않는다.

도무지 이를 데가 없는 길 위에 있는 서사는 그 순간, 하나의 이미지, 혹은 한 편의 시가 된다.

이것이 끝나지 않는 서사로서 소설의 핵심이다.

소설의 등 뒤에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아무 것도 없게 쓰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동시에 그것이 끝이다.

시작과, 그것과 동일한 끝 사이에서 쓰는 자는 오로지 주사위 놀이만을 할 뿐인 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나의 글을 읽어 준 타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심사위원들에게 더없이 감사하다.

그리고 언제나 나와 함께 그가 서 있었으며, 지금도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