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삶의 궤적 스며있는 공간
日강점기 상처·개발논리에 치여
근현대사 흔적들 사라져 ‘아쉬움’
인천지역 옛집·건축물 50곳 선정
문을 열고 들어가 생활상 엿보기
전문가 통해 건축적 가치 재조명
◈인천의 근현대사
제물포 개항 이후
외국인들 모여들기 시작
일제강점기때는
항만·군사기지 들어서고
철도·천일염전 등장
해방후 미군이 들어왔고
전쟁후 휴전선 그어지며
실향민·빈민들 자리잡아
21세기 들어서는
국제공항이 건설되고
경제자유구역엔
UN 기구들이 둥지 틀어
인간의 보호막과 같은 역할을 건축물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건축물로 인해 인간은 계절에 대처하는 능력을 가지게 됐으며 정착할 수 있었다. 건축물의 역사가 곧 인간의 역사가 된 것이다.
20세기 최고 건축가 중 한 명인 루이스 칸(Louis Kahn·1901~1974)은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건축물엔 건축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말로, ‘건축가는 인간을 위한 공간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건축물은 단순히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인간 삶의 궤적이 스며있는 역사의 공간이다. 인천 곳곳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과 고택(옛집)에는 인천의 근대 시기를 거쳐 현대화 되기까지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시간이 멈춘 박제된 풍경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경인일보가 2016년 연중기획 대주제를 ‘(인천)고택 기행’으로 정했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아이러니하게도 100년 전 건축물은 몇 채 남아있지 않다. 그 이전의 문화재들은 다양한 노력과 방법으로 보존되고 있지만, 근대의 유산들은 기억 저편으로 묻히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쓰라린 역사가 배어 있다는 이유 혹은 개발 논리에 치여서 그렇게 근현대사의 흔적들은 사라져 갔다. 우리의 역사 또한 아쉽게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도시가 흐르는 시간을 타고 변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인천만큼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는 드물다.
근대 이후만 놓고 본다면, 1883년 제물포 개항과 함께 한적하던 어촌에 외국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항만이 건설되고 군사기지가 조성됐다. 철도가 놓였고, 최초의 천일 염전이 만들어졌다. 해방이 되어선 미군이 들어왔으며, 전쟁 후에는 휴전선이 그어지며 고향을 등진 실향민과 먹고살기 위해 전국의 빈민들이 모여들었다.
21세기 들어 국제공항이 건설되고, 경제자유구역에는 UN 기구들이 둥지를 틀었다. 100여년 전 외세에 의한 강제적 국제도시화를 겪은 인천이 자발적으로 국제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경인일보 기자들은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인천지역의 근대 건축물과 고택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 공간과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다.
건축적 가치가 있는 대상에 대해선 지역 건축분야 전문가의 견해를 통해 그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며, 지역 주민의 삶이 묻어나는 옛집에선 거주자와 인터뷰를 통해 그 역사와 인생을 드러낼 것이다. 인천을 말하고, 인천의 도시 특성을 이야기할 것이다.
인천의 원도심이었던 중·동구 지역을 비롯해 원도심과 다른 문화권이었던 부평구, 강화·옹진군 등의 곳곳에는 근대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이번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개항장 일대를 둘러봤다. 한국 최초의 도시계획에 의해 일본, 청국 등 각국 조계지가 조성됐으며, 서구 문물 유입의 길목이었던 곳이다. 외교·무역·상업의 각축장이었다.
이 일대에서 만날 수 있는 근대건축물만 해도 우체국과 은행, 옛 창고, 기상대, 제물포구락부, 중구청, 종교 관련 공간 등 다양했다.
옛집으로 인천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천의 다양한 특성을 담고 있는 집과 근대건축물들을 선별해야 했다. 지역 향토사학자와 건축 분야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50곳을 선정했다. 취재반의 기자들은 선정한 옛집과 관련한 각 분야의 기초 자료를 수집하고 그 집의 거주자들을 만나고 있다.
옛집을 취재한 기자들이나 그 곳에서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 거주자들 모두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독자들 또한 우리 주변의 공간과 그 곳에서 살아온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인천을 들여다 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옛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 그들이 거닐었던 거리와 살았던 집들은 지금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이번 기획을 통해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글 =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 사진 =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