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다문화-남양주
이국화(사진 오른쪽)씨가 "남편이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는 밤늦게까지 자꾸 뭘 내오라 한다"고 원망하자 타니무라 히토미씨는 "그래서 우리 남편은 아예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잘 안 들어온다"고 맞받아쳤다. 남양주/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中 하얼빈시 출신 이국화씨
버스카드 이용법 몰라 자주 헤매기도
초등생 아들 또래와 소통미흡 '막막'
가족지원센터 사회성 향상 도움받아
똑같은 잘못에 '다문화라…' 편견 안돼

◈日 카츠라기시 출신 타니무라 히토미씨
과격한 말싸움 시댁문화에 '마음고생'
남편의 사랑한다는 말 '든든한 버팀목'
언니와 달리 '다문화 쉬쉬' 막내딸 고민
'사람 자체 존중' 분위기가 국가의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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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됐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다문화'란 용어도 생소하지 않게 됐고 이주 외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하지만 언어, 주거, 문화, 경제적 빈곤, 가족 갈등, 사회 편견과 차별 등 이들 이주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도 이들이 한국사회에 좀 더 빨리 올바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구체적인 관심이 중요하다. 이에 발 맞춰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이들의 안정적인 지역사회 정착과 사회통합을 도모해야 한다. 연중기획 '우리동네 다문화'를 통해 대한민국 다문화의 현재 모습을 조명해 보고 희망이 가득찬 미래의 다문화 사회를 그려본다. ┃편집자 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출신의 이국화(46·화도읍)씨와 일본 나라현 카츠라기시 출신 타니무라 히토미(41·별내동)씨는 지난 2000년 한국에 왔다. 이씨는 전라도 남자를, 히토미씨는 경상도 남자를 각각 만나 남양주시에 정착했다.

같은 동북아시아, 한자문화권으로 묶였음에도 한동안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두 사람은 비슷한 듯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한국을 배우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남양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강사로 일하며 남양주지역 청소년들에게 글로벌시대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바다 건너 생면부지의 '외국인'이었다가 동료이자 이웃 자매로 인연을 맺은 이씨와 히토미씨의 유쾌한 한국생활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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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교육 중인 타니무라 히토미씨. /남양주시 제공

#당혹스런 음식, 습관, 그리고 시댁문화

한국생활 초기에 이들의 큰 고충은 역시 음식이었다.

이국화씨는 "임신했을 때 초차이(중국 동북지방 볶음채소요리)라든지 담백한 탕이 너무 입에 당겼는데 그때만 해도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야만 먹을 수 있었다"며 "지금은 화도읍에서 건두부나 양고기를 파는 상점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히토미씨는 "우동 면발이 일본과 달라서 고향 생각이 많이 났는데 이제 한국 우동도 쫄깃해졌다. 그래도 다양한 일본 과자를 맛볼 수 없는 점은 아쉽다"고 푸념했다.

이어 이씨는 "남편 도움 없이 혼자 외출할 때 종이로 된 전철표를 어디에 투입할지, 버스카드는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몰라서 자주 헤맸다"며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자 히토미씨는 "화장실 휴지를 모아놨다가 버리는 것과 두루마리 휴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혀 좌중을 웃음 짓게 했다.

둘 다 한국 특유의 시댁문화 때문에 마음고생 했던 점도 닮아 있다.

이씨는 제사상과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과일 깎는 방법 등 하나하나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왜 꼭 이래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실수가 잦았어요. 더욱이 평상 시 시댁식구들의 직접적인 감정 표현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최근까지 13년 동안 시부모와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히토미씨가 이에 질세라 거들었다. "시댁식구끼리 과격(?)하게 말싸움하는 걸 보고 상처를 받았어요. 일본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가만히 있는 편이거든요."

남편들의 자상함은 이국에 뿌리내리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씨는 "중국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남편은 쉴 새 없이 해줬다"고 자랑했다. 이어 "요즘은 사랑한다는 표현이 부쩍 줄어 왜 안 하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해야 하느냐'고 되묻더라"며 못마땅해 했다.

히토미씨는 "나도 남편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그 힘으로 살아왔다"며 "생일 때 풍선을 배달받은 건 상상도 못 한 이벤트였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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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교육 중인 이국화씨. /남양주시 제공

#순탄할 것 같던 주부생활 '다문화 자녀' 변수로

행복할 것만 같던 한국주부로서의 삶은 자녀들이 생기면서 예기치 못한 난관에 직면한다.

초등학생 외동아들을 둔 이씨는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외삼촌은 왜 우리나라 말을 안 하느냐'고 물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막막했다"며 가슴 아파했다.

관심을 뒀을 때 아이는 이미 또래들과의 소통이 미흡했고, 이씨는 뒤늦게 남양주시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라는 곳이 있는 걸 알고는 부랴부랴 상담을 요청했다.

센터는 한영외국어고등학교 봉사동아리 '모자이크' 회원들이 아이를 전담케 해 사회성 향상을 도왔다. 최근 아들의 학교에서 중국문화를 강의한 이씨는 "엄마가 와서 좋았다"는 칭찬을 들었다.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결혼해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쌍둥이 남매와 초등학교 4학년 딸을 양육 중인 히토미씨는 집에서 자녀들과 한국어, 일본어를 섞어가며 소통한다. 외갓집에 가는 걸 좋아라하던 아이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엄마의 나라 문화를 배운다.

그런 히토미씨에게도 자녀와 관련된 고민은 있다. 막내딸이 자기가 다문화 가정임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쌍둥이 언니, 오빠와의 인식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건지 히토미씨는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는 "학부모들도 다문화교육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어렴풋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문화교육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자녀 교육을 둘러싼 남편과의 의견 차이도 흥미롭다. 이씨는 아들에게 뭐든 최고로 해주고 싶다. 특히 공부만큼은 뒤처지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남편은 "어릴 때일수록 놀아야 한다"며 인성교육에 신경 쓸 것을 당부한다.

이씨는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기본 자격이 필요하고, 이력서의 학력을 무시할 수 없다"며 학원을 보내지 않는 남편과 언쟁한다.

히토미씨는 반대다. 남편이 공부를 최우선시하는 데 반해 그는 "셋 다 성격과 관심사가 다른데 무조건 다 공부만 강요할 수는 없다"며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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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풍물동아리는 엄마와 자녀가 함께 우리 고유의 가락을 익혀가며 한국의 정서를 함양하고 있다. /남양주시 제공

#우리는 똑같은 사람

남양주시는 지난 한해 관내 초·중·고교와 도서관을 순회하면서 총 66회에 걸쳐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출신 다문화 강사 교육을 추진했다. 올해는 다문화 국가와 교육대상을 더 늘릴 계획이다.

이씨와 히토미씨는 다문화강사로 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수익을 안기지는 못할지언정 "이 나라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끝으로 이씨는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똑같은 잘못을 해도 '쟤는 다문화라서 저래'라는 식의 편견이 앞서지 않도록 국가에서 홍보에 힘써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울러 히토미씨는 "모든 지구촌 사람은 아프고, 슬프고, 즐겁고, 행복할 줄 안다"면서 "다문화 문제 이전에, 사람 자체를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바로 국가의 격 아니겠느냐"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남양주/이종우·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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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