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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경동 127에 있는 한옥의 내부 전경. 대들보와 부재료들이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다. 건축재생 전문가 이의중(37)씨 가족이 지난해 가을부터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새주인 '건축재생 전문가' 이의중씨
원형보존 잘된 큰 규모 고급재료 특징
불편함 감수 한옥 매력에 끌려 이사와

◈前주인 故 조인흡 인천탁주 5대 회장
11개 회사 강제통합후 기틀잡은 인물
은행 사택이던 곳에 1959년부터 살아

◈건축물대장 처음 이름 올린 정창모씨
근업소·경상친목총회 신문기사 등장
영남상인 중심 미곡중개업체와 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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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역사를 품고 있다. 특히 사람이 머물렀던 옛집은 더욱 많은 사연과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인천시 중구 개항로 96번길 11(경동 127)의 1942년에 지어진 한옥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집에는 옛 건축물에 현대적 감각의 숨결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건축재생 전문가 이의중(37)씨 가족이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살고 있다.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생활한 이씨와 그의 가족이 경험해 보는 첫 번째 한옥이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한옥에 살기로 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 집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집은 인천 사람들이 '싸리재'라고 부르는 언덕길 인근에 있다. 인천 경동사거리에서 애관극장 앞을 거쳐 배다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인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싸리재라고 불렀다. 옛날 이곳에는 싸리나무가 흔했다고 한다.

경인철도가 개통되기 이전 배를 타고 와 인천항에서 내린 사람들은 서울로 가기 위해 이 싸리재를 넘어야 했다. 지금 인천 중구의 법정동 가운데 하나인 경동은 이 싸리재를 품고 있는데, 서울로 가는 길목이라 해서 서울 '경(京)'자를 따왔다.

최근 이씨를 만나 그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그는 싸리재에서 밤나무골이라 불린 율목동(栗木洞)으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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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시멘트기와를 얹고 편의를 위해 유리 창호를 덧댔다.

미장원 옆 초라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작은 철문 앞에 멈춰선 그는 열쇠를 꺼냈다. 머릿속에 그린 한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문을 열자 한 사람이 겨우 다닐만한 좁은 진입로가 나타났고,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3~4m 더 들어서자 번듯한 한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와는 시멘트로 바뀌었고 대청마루에 유리문을 덧대었지만, 전체적인 틀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어른 키 두 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높은 천정이 실내임에도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사용된 목재들도 잘 남아 있어 누가 보더라도 잘 지어진 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 구조는 디귿(ㄷ) 형태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방과 부엌이 나란히 붙어있는 좌우가 대칭된 모습이었다. 뒷마당이었던 곳은 지금은 지붕을 얹어 주방으로 고쳐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특이했다.

그는 "옛 모습이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는데, 근대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과 달리 이 한옥은 규모가 크고 고급 재료를 사용해 지어진 점이 특이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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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측면(남쪽)과 후면(동쪽)의 모습.

집 구경이 끝나고 나서 그는 이전 집주인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두고 간 사진첩과 건축물대장 등 부동산 관련 서류들을 펼쳐놓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기 직전까지 이 집에 살았던 주인은 인천의 대표 막걸리 소성주를 만드는 인천탁주의 5대 회장인 고(故) 조인흡(1919~2015)이었다. 조 회장은 경기도약사회 3·4대(1959년 10월~1961년 10월) 회장(지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인천 관교동에서 태어난 조 회장은 경성약전(서울대 약대)을 나와 인천 율목동에 있던 경기도립병원에서 약사로 근무했다. 약사를 그만둔 뒤에는 배다리 인근에 '합동약국'을 개업했다.

그는 약국을 접고 관교동 일대에 있던 탁주 공장인 부천양조를 인수한 후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박정희 정부의 합리화 정책에 따라 인천에 있던 11개 지역 탁주 회사가 통합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출범한 인천탁주의 주주가 됐다.

그는 인천탁주의 5번째 회장으로 1979년부터 1995년까지 일하며 회사의 기틀을 잡아 놓았다. 전국 최초의 쌀막걸리인 소성주와 멸균 '테트라팩' 막걸리인 '농주'를 개발해 해외에 수출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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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 127 한옥 평면도 /이의중 (주)건축재생공방 대표 제공

정규성 인천탁주 현 대표는 조인흡 회장에 대해 "11개 회사가 강제로 합쳐진 통합 회사의 경영을 안정화 시키며 기술 개발에도 노력하는 등 인천탁주의 기틀을 닦아 놓은 분"이라고 했다.

조 회장의 아내는 전순비 인천YWCA 명예이사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녀는 40년 이상을 이 단체에 속해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그의 첫째 딸은 조윤희 서울바로크합주단 이사장이고 첫째 사위는 박진 전 국회의원이다.

조 회장의 가족은 1959년부터 이 집에서 살았다. 그 이전에는 인근에 있던 상업은행 인천지점 직원들의 사택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병원 인근에 있던 상업은행 인천지점 자리에는 지금 대형 요양병원이 들어서 있다.

이 고택의 건축물대장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 정창모씨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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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방1' 문을 열고 바라본 거실.

1922년 동아일보 1월21일 '근업소정기총회' 기사를 보면 정씨가 회원 명단에 등장한다. 1922년 동아일보 5월 5일자 신문에 게재된, 인천에 사는 경상도 인사로 조직된 '경상친목총회' 모임이 열렸다는 기사에도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

근업소(권업소)는 1906년 대한제국 상공부의 허가를 받고 설립된 미곡중매업체로 수수료를 받고 일본인 상인에게 쌀을 중개하는 업체였다.

향토사학자인 신태범 박사가 쓴 '인천한세기'에는 권업소에 대해 "일어에 능통한 부산에서 올라온 영남 상인이 중심이 되어 1906년 조직한 미곡중개업체였다. 율목동은 권업소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부산 등 영남사람이 주로 모여 있었다"고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인천 중구 율목동은 경동과 북쪽으로 맞닿아 있다.

건축역사학자인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는 "근대 도시형 한옥들은 건물 자체의 문화재적 가치보다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질 때 빛을 발한다"며 "이들 주택을 잘 보존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면 충분히 문화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 =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 사진 =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