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선물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동네책방 그리워
탑건·더티댄싱·예쓰마담2… 할리우드·홍콩영화 점령
잇단 살인·강도·절도·화재… 사흘간 279건의 교통사고 '안타까움'

삶이 팍팍하고 생활이 빠듯할 때일수록 아득한 옛날을 그리게 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수없이 회자되며 열풍을 몰고 온 것도, 힘든 지금을 잊는 대신 과거를 추억하다 보면 잠시나마 행복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경인일보는 여느 때보다 힘든 시기에 맞는 명절인 만큼 30년 전 그 때의 기억을 다시 되짚어보고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설 선물을 책으로?

그 시절은 참 낭만적이었다. 설을 전후해 연말연시에 서로에게 책을 선물하며 마음을 전하느라 동네 서점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서점이 대형화하면서 동네 책방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물론 당시에도 서점가는 몇년간 심한 불황을 겪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며 책을 선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한겨울의 기현상'으로 불릴 만큼 1988년의 명절에는 서점가에 호황이 이어졌다. 요즘은 명절에 책을 선물로 주고받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우, 과일, 상품권 등 '낭만'보다는 '실속'있는 선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게다가 직접 선물을 고르기는커녕 휴대전화로 원하는 선물을 결제해 보내는 세상이다. 당시 책 가격이 2천~3천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016년 설 선물의 가격대는 천차만별이다.

프리미엄 소비자들을 위한 한우 선물세트는 130만원을 훌쩍 넘는 것도 있고, 샴푸 치약 세트와 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은 10만원 이하의 '알뜰' 선물로 분류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선물도 변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책을 사려는 이들로 북적이던 그 시절 그 기사 속 서점들이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 씁쓸하다.

#예나 지금이나 극장가는 명절 특수

'검사외전', '쿵푸팬더3' 등 수십 편의 영화가 올 설 연휴를 겨냥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88년에도 민족 대명절 설을 맞아 극장가에서는 다양한 신작을 내놓으며 관객몰이를 했다.

긴 연휴 기간 가까운 곳에서 부담 없는 가격에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이들이 2016년이나 1988년이나 같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설 명절 극장가를 휩쓴 대표작은 지금도 명작으로 꼽히는 '탑건', '로보캅', '리셀웨폰', '지젤', '더티댄싱' 등 할리우드 영화들이었다.

80년대에 할리우드 영화와 같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홍콩 영화인 '예쓰마담2', '호소자2', '동방독응'도 극장가를 차지했다. 국내 명절 극장가의 공식인 '명절=액션+코믹'이 1988년에도 성립됐던 것이다.

#들뜬 마음에 사고로 얼룩지는 설 연휴

명절에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행복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명절마다 어김없이 사건 사고 소식이 전해져 보고 듣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1988년에도 경인일보는 '신정연휴 사고로 얼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해야 했다.

연말과 신정연휴의 들뜬 분위기를 틈타 경기 인천지역에서 살인, 강도, 절도, 화재, 교통사고 등이 잇따라 20여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다는 내용이다. 고향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그 당시 설이었던 신정 1일 하루동안 98건, 연휴 3일간은 279건의 교통사고가 났다.

2016년에도 명절을 코앞에 두고 사건사고가 줄을 이었다. 부천에서는 여중생 딸을 숨지게 해 백골 상태가 되도록 방치한 목사 아버지가 붙잡히는가 하면, 앞서 시흥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친구에게 남편을 살해해달라고 청부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혀를 내두를 만한 강력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황준성·신선미기자 ssunm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