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복원 중요 근거… 미래 위한 배려·역량

화성성역의궤
화성성역의궤 /수원시 제공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을 기억한다. 장군하면 바로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고, 대왕하면 '세종대왕'이 떠오른다. 여기에 수원시민들은 역사적 인물로 대왕하면 '정조대왕'을 떠 올린다. 왜 일까? 이들의 공통점은 기록에 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의 풍파 속에 일기를 남기셨고, 세종대왕은 우리의 글 '훈민정음(한글)'을 만드셨다.

그리고 수원시민들의 영원한 대왕인 정조대왕은 수원 화성을 축성하고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라는 기록을 남기셨다. 수원 화성이 오늘날 원형에 가깝게 복원돼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기록이다.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하도록 하기 위해 그 일의 모든 것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화성성역의궤'는 정조 18년(1794) 1월부터 정조 20년(1796) 8월까지의 화성성곽 축조의 시작과 끝, 제도와 의식 등을 자세히 기록한 책이다.

전체 10권 10책으로 정리자(整理字)라는 활자로 인쇄돼 정조 사후 순조 1년(1801)에 전권이 간행됐다. 17세기 이후 성의 축조 방식 변화와 노력, 당시 학자들의 국방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축성법에 관한 자세한 기록과 함께 각종 시설물과 기계의 그림(도면)을 수록했다.

가장 우수한 점은 당시 화성의 모습을 의궤만으로도 충분히 복원할 수 있도록 만든 미래를 위한 배려와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는 1795년 정조대왕의 8일간 화성행차를 알려주는 기록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포함한 833여종의 '조선왕조 의궤'로 2007년 6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기록은 자신감이 넘쳤던 조선의 르네상스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며 '수원 화성'이 그 중심에 있음을 당당히 말하고 있다.

도움말/수원시 이동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