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산 정상 총 지휘소 '서장대' 성안팎 한눈에
탁트인 '동장대' 활쏘기·말타기 무예수련장소
언덕위에 '각루' 주변감시·휴식등 '복합역할 건축물'
동북각루, 빼어난 연못 경관 '방화수류정'이라 불려
수원 화성은 계획 신도시면서 전투 요새였다. 군사적인 측면과 함께 빼어난 미적 완성도를 갖춘 건축물을 살펴본다.
■장대(將臺)는 성곽 일대를 한 눈에 바라보던 총 지휘소다. 수원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한 곳이기도 하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가 설치돼 있다.
①서장대
=팔달산 정상에 터를 잡고 있는 서장대는 화성의 총 지휘소다. 군사지휘소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청이 화려하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으로 정조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서장대에 올라서면 성의 안팎이 한눈에 들어오며 팔달산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경관도 감상할 수 있다.
정조는 1794년 팔달산에 올라 사방을 두루 살핀 다음 "이곳은 산꼭대기의 가장 높은 곳을 골라 잡았으니 먼 곳을 살피기에 편리하다. 기세가 웅장하고 탁 트였으니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장대라고 이를 만하다"고 했다고 전한다.
다음해 인 1795년 윤 2월 12일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 참배를 마치고 이곳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야간 훈련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②동장대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를 훈련하고 지휘했던 곳이다. 화성의 동북쪽에 있는데 무예를 수련한다는 의미로 '연무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동장대 왼편 담 밖에는 넓은 조련장이 마련돼 말타기와 활쏘기 훈련이 이뤄졌다. 지금도 이곳 연무대에서는 활쏘기 체험장이 운영 중이다.
동장대는 서장대처럼 지형이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인 데다 등성이가 솟아 성 안을 살피기 좋은 군사요충지다. 바람이 좋은 날에는 연을 날리는 시민들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연무대 일부 통로는 말을 타고도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이 아닌 경사로로 만들었다.
전각의 내부 바닥은 3개 층으로 두고 한 칸씩 올라가면서 높아지는데 지휘하는 장수의 위엄을 고려했다. 뒤뜰에는 성벽과 동장대 사이에 영롱무늬 담장을 둘렀다. 동장대에 있는 왕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군사들이 담 뒤에 숨어서 몰래 지켜보던 곳이다.
■각루(角樓)는 성곽의 높은 언덕에 건축됐다. 누각을 세워 주위 일대를 감시하고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비상시에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했다. 요즘 말로 복합건축물이다. 화성에는 4곳의 각루가 배치돼 있다.
①동북각루
=용머리 바위 위에 있는 동북각루의 바로 앞에는 연못인 용연이 있다.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졌다. 이 때문에 화성의 여러 시설물 중에서 빼어난 곳으로 손꼽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광객들 사이에서 사진 촬영장소로 인기가 높다.
동북각루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꽃을 쫓고 버드나무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정자'라는 의미다. 경치가 얼마나 빼어난 지 광복 후에는 용연 주변으로 기생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동북각루는 공사기간이 한 달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다음 해에 있을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에 맞춰 미리 공사를 마무리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화성장대 다음의 전투지휘소인 동북각루는 실제 전투지휘용 보다는 쉼터로서 애용됐다. 보물 제 1709호다.
②서북각루 외
=서북각루는 화서문의 서남쪽 산기슭의 성벽이 돌출되고 휘어 굽은 곳에 건축돼 있다. 화성에 주둔했던 군사들을 지휘한 곳이다. 동남각루는 팔달문 옆 수원천의 동쪽 높은 구릉 정상에 위치해 있다. 성벽이 꺾인 모퉁이라 성 전체를 바라보기 좋다.
성벽이 산세 때문에 이곳에서 가파르게 뚝 끊어지고 성 위로 불쑥 나왔기 때문이다. 이밖에 서남각루는 화양루로 불린다. 화양이란 화성의 남쪽이라는 의미다. 화성 방어의 군사 요충지 역할을 했다.
/김대현·김민욱기자 kmw@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