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학응 선생 제자 전통 맥 이어
공예품 200여점 박물관 12곳 전시
값싼 외국산 관광 상품 대신해야
금속 재질에는 그림을 그릴 수도, 색깔을 칠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대로 두면 금속이란 재질 때문에 차갑고 무거우며 어둡다. 따라서 끌을 이용하여 점, 선, 면을 새긴 다음, 그런 홈에 금은의 실이나 판을 박아 넣어 문양이나 도상을 표현했다. 이를 일러 입사공예(入絲工藝)라 부르고, 그 장인을 입사장이라 부르고 있다.
입사공예는 섬세하고 아름답다. 금속성의 바탕에 금은의 광채가 더해져 화려하면서도 품격이 있다.
금속에 홈을 내고 거기에 그림을 박는 작업이기에 은근한 끈기와 단아한 정신이 요구된다.
이런 까닭에 입사공예를 '금속공예의 정화'라 부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예품으로 들고 있다.
백제가 만들어 왜국의 왕에게 선사한 칠지도(일본 국보)를 위시하여 청동제은입사정병(국보 92호) 등 국보 3점, 청동제은입사향완(보물 778호) 등 보물 4점이 국보급 문화재로 현재 지정되어 있다. 이런 사실만으로 작품성과 예술성을 알 수 있으며, 우리나라 공예품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입사공예의 정신과 맥을 잇는 경기인이 있으니, 1997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입사장으로 지정된 금속공예가 이경자(李敬子·64)이다.
그는 조선시대 마지막 입사장이었던 고 이학응 선생의 제자로,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전통 은입사(銀入絲) 공예의 맥을 잇고 있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그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재현한 은입사 공예품 200여 점은 현재 전국 12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장신구에서부터 벽장식, 옥외 공간 장식에 이르기까지 전통공예와 현대 금속 공예를 접목시키는 다채로운 시도로 입사의 지평을 넓혀 나가고 있다.
이런 그의 작품에 대하여, 시인 김재진은 "쇠를 다루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은 마치 비단에 수라도 놓은 듯 착각할 정도로 섬세하고 미묘하다. 그녀의 작품은 마치 동화 같기도 하며 하나하나가 모두 시 같기도 하다"라고 평가 하였다.
공자는 군자의 자질로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들었다. 속모습의 바탕, 겉모양의 꾸밈 어느 하나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금속 바탕에 아름다운 무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입사공예품은 '군자다운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전통공예인 입사공예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고 예술성과 작품성을 불어내어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일구어낸 입사장 이경자의 작품은 공자가 수차 강조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구현이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문화가 나아가야 할 예술적·현실적 길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안성 보개면 기좌리에 그의 공방이 있으며, 공간 사리(www.sariuna.com)에서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중국의 수많은 유커들이 한국을 많이 찾는 요즘 값싼 외국제 관광 상품 대신 인간문화재의 작품들을 판매할 수는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