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문학세계 등 주제발표·토론
상해 항일운동·신문기자 등 거쳐
재평가 진행중… 연구 세분화 필요
작가 김광주를 조명한 최초의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 15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렸다. (사)경기르네상스포럼이 개최한 이번 행사에서는 한동민 수원박물관 학예팀장, 조성면 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이 김광주의 생애와 활동, 문학 세계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재용(원광대), 김명섭(강남대), 박환(수원대) 교수는 토론자로 참여했다.
김광주(1910~1973)는 수원 신풍동 출신으로 장·단편소설뿐 아니라 무협소설, 연극과 영화 및 라디오 방송을 위한 번안소설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활동했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들과 반공포로를 다룬 장편소설 '석방인'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한국 최초의 '정협지'를 쓰는 한편 '삼국지', '서유기', '옥루몽' 등 중국 고전을 번역했다. 30년대 상하이에서 항일운동을 벌였고, 해방 후 경향신문 문화부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대중문학연구가 활성화한 90년대 중반이 되어서다.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더욱 커졌다.
발표자들은 "김광주는 40여년 간 문학활동을 펼쳤고, 50년대 초반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는데 지금은 저평가 되고 있다"며 "김광주 문학의 전체적 성취에 대한 것이 아니라 거개가 1950년대 초반까지 단편소설에 대한 분석과 연구에 집중되어 왔거나 60년대 이후 무협소설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대부분이라 세분화해 연구를 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을 지켜 본 김훈 작가는 "30년대의 상하이는 혁명가와 밀정과 모리배가 들끓던 악마굴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그곳에 살다 해방이 되자 쪽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평양으로 왔다. 평양은 온통 스탈린의 얼굴로 도배가 돼있고 붉은 군대들이 여자들을 강간하는 것을 수없이 봤다. 서울에는 만주에서 밀정, 친일했던 사람들이 다들 자기가 독립운동 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인간으로서의 김광주를 말하자면, 억압과 야만의 세상에 태어나 살다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하이나, 평양이나 서울이나 발붙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물려받은 것은 살인적인 가난과 억압적 정치구조의 사회였다. 가난은 해결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수많은 억압과 비리를 만들었다. 우리 후배 세대들이 수많은 피를 바쳐 민주화를 이룩했는데 지금 우리는 후퇴하고 있는것 같다. 청년들을 시스템에서 몰아내고 있다. 아버지와 나의 세대가 시대에 바쳤던 것들의 의미가 퇴색돼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경기르네상스 포럼은 지역 내 주민자치 실현과 지역 활성화를 위한 조사연구, 문화행사를 수행하는 단체로 지난해에는 수원의 독립운동가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을 벌였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