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문수봉 '실천·지혜' 상징
영취·나한봉은 말씀전하는 곳
탐방객 구도자의 마음 닮아가
북한산성의 승병(僧兵)대장인 도총섭(都摠攝)을 35년 동안 맡았던 성능(聖能)대사는, 1745년(영조 21) 북한산성의 종합인문지리지인 『북한지(北漢誌)』를 목판본으로 만들어 후임자에게 전했다.
이 『북한지』에는 북한산성의 지세, 도로, 사찰, 창고, 군영 등을 그린 '北漢圖'를 첨부하여 산성 전체를 조감할 수 있게 배려했다.
아울러 성능은 『북한지』에서 북한산성의 봉우리 29개에 대한 이름을 모두 소개하고, '북한도'에 주봉인 백운봉(白雲峰)을 포함하여 원효봉(元曉峰)·보현봉(普賢峰)·문수봉(文殊峰)·영취봉(靈鷲峰)·나한봉(羅漢峰) 등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했다.
한편 북한산성은 대서문과 대남문을 잇는 간선도로를 중심축으로 삼았는데 산성의 정문격인 대서문의 좌우로는 원효봉과 의상봉이 위치하고 출구격인 대남문은 보현봉과 문수봉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은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원효가 불교의 대중화를 통하여 백성의 교화에 크게 이바지 했다면, 의상은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교단의 확립과 제자의 양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원효가 파계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무애(無碍)한 행동을 보였다면 의상은 귀족적 풍모에 원융(圓融)한 성품을 지녔다.
이처럼 의상과 원효는 매우 대조적이지만 상호보완적 존재였고, 그들 덕분에 신라의 불교는 알차고 풍부하게 되었다
보현보살은 베품과 실천의 상징이며,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다. 이 두 보살을 부처의 협시보살로 둔 이유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되었을 때에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설파하기 위함이라 해석된다.
한편, 대서문과 대남문의 중간쯤에는 영취봉과 나한봉이 자리하는데, 영취봉은 부처가 최후의 설법을 했다는 영취산에서 따온 이름이며 나한은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큰 깨달음을 얻은 고승대덕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북한산성의 영취봉과 나한봉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 북한산성의 지명은 의미심장하다.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중도(中道)의 길과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 즉 불법의 핵심을 무언으로 전하고 있다.
이에 북한산성을 찾는 탐방객들이 구도자의 마음으로 북한산을 대하고, 북한산성의 도처에 스며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음미했으면 한다.
지명도 문화유산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지명에는 공간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이 녹아 있다. 지명을 포함한 이름들이 점차로 가벼워지고 의미성이 떨어지고 있다. 기발하고 재치는 있지만 자극적이고 세속적이다.
그에 비하여 우리 선조들은 이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고, 그 상징성을 귀감으로 삼고자 했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좀더 진지한 작명(作名)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현재 북한산성에서는 남한산성에 이어 유네스코(UNESCO)에서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지속적으로 학술조사와 보수정비를 시행하고 있고, 대서문으로 들어오는 초입부에 경기문화재단 문화유산본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북한산성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가 있어 일반인들에게 북한산성에 대한 다양한 안내와 정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더하여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문화콘텐츠를 풍부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산성의 지명은 북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는 디딤돌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