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위해 건설 1990년 중반까지 운행… 유일하게 남은 역사
선로와 평행 배치 넓은 창문 특징 '강점기 표준설계' 그대로 적용
업체서 임대해 사용… 요즘 보기드문 철도 급수탑도 녹슨채 방치
문화재 지정 지지부진 속 인천구간 재개통돼 '보전 필요성' 지적
가을에 그 작고 낡은 기차는 어차피 노을 녘의 시간대를 달리게 되어 있었다. 서해안의 노을은 어두운 보랏빛으로 오래 물들어 있고, 나문재의 선홍색 빛깔이 황량한 갯가를 뒤덮고 있다. 윤후명 저 '협궤열차' 중에서(책 만드는 집)
지난 2월 수인선 송도역∼인천역 구간이 폐지된 지 20년 만에 재개통했다. 내년 12월 한대앞역~수원역 구간이 완공되면 인천에서 수원까지 52.8㎞의 수인선이 모두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에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조그마한 크기의 동차(動車)가 있었다. 열차의 레일 간격은 762㎜로 국제 표준 궤(1천435㎜)의 절반에 불과했다. 수원과 인천을 오가며 궤간 너비가 표준보다 좁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수인선 협궤열차로 불렀다.
이 열차는 1937년 일제의 쌀·소금 수탈 수단으로 처음 건설됐지만, 광복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약 50년 동안에는 서민들의 발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교통망이 확충되면서 수인선의 화물과 여객이 크게 줄었고, 1973년 11월 종착역인 남인천역(수인역)이 폐쇄됐다. 이후 수원~송도 구간만 운행하다 1977년부터 화물 운송이 중단됐고, 1995년 12월에는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여객 운송마저 멈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협궤열차가 운행을 중단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섭섭해 했다. 하지만 경제성 논리에서 협궤열차만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열차가 폐지되면서 수인선의 역사(驛舍)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종착역이었던 남인천역(수인역)은 일찌감치 사라져 터만 남아 화물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용객이 가장 많았던 소래역도 몇 년 전 철거되고 시내버스 종점이 됐다.
지난 1일 수인선 역사 중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송도역사를 찾았다. 1937년 수인선 개통과 함께 만들어진 송도역은 1973년 남인천역이 폐쇄됨에 따라 20여 년 동안 수인선 인천지역의 시종착역 역할을 했다. '송도'라는 지명은 섬처럼 생긴 곳에 소나무가 많다는 의미로 일본이 붙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도시 규모에 따라 갑(50~60평)·을(48평)·병(38평)·정(30평) 등 크기에 맞춰 역사를 설계했다. 송도역사의 규모는 125㎡(38평)로 당시 중소도시에 많이 세워지던 '병형'으로 설계됐다. 개통 당시 송도 지역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85년 7월부터 1988년 1월까지 송도역장을 지낸 박철호(73)씨는 "내가 역장을 처음 맡았을 때는 이미 승객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음에도 주말에는 1량을 더 달아 3량으로 운행할 정도로 승객이 많았다"며 "출퇴근 시간에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많이 이용했고, 주말에는 소래포구를 가는 사람들이나 나들이객이 역을 많이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주말이면 역 앞에서는 송도 갯벌에서 잡은 해산물이나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농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열렸다"며 "짐을 나눠 들고, 중매가 이뤄질 정도로 협궤열차 안에는 정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역사는 철도와 평행하게 배치됐고, 선로를 조작하는 운전실은 철도가 잘 보이는 직각 방향으로 자리잡았다. 일제강점기의 철도역사 표준설계도의 특징이 그대로 적용됐다. 이와 함께 철도 방향으로 돌출시키고 넓은 창문을 배치해 기차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거 많은 사람이 이용했던 송도역이지만 현재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채 초라한 모습이었다. 역사 정면에 쓰인 '송도'라는 두 글자 이외에는 이곳이 옛 송도역이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천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철도 급수탑(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는 시설)'도 녹이 슨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나마 이곳을 임대해 쓰고 있는 업체에서 건물 주변 정리를 하고 있어 쓰레기로 가득하지 않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로 보였다. 하지만 역사 내부는 여러 임대 업체들을 거치면서 수차례 변경돼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수인선 인천 구간이 개통되면서 수인선을 다시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수인선 역사가 문화재로 보전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근대 건축 전문가인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협궤열차 역사이고, 소래철교와 더불어 인천 지역에서 수인선을 추억할 수 있는 둘뿐인 시설물"이라며 "송도역 인근에 위치한 '철도 급수탑'은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철제 급수탑인 점도 이를 보전해야 할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12년부터 인천시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됐지만, 아직 지지부진하다. 게다가 도시개발사업지구에 송도역 일부 부지가 포함된 상황이다. 만약,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다면 옛 소래역처럼 개발 논리에 밀려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손 교수는 "송도역사(驛舍)의 내부가 많이 변형됐기 때문에 건축학적 보전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수인선 관련 시설,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마지막 협궤열차라는 것은 충분히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현재 위치가 아닌 바로 옆으로 이전하더라도 송도역사는 반드시 보전돼야 한다"며 "이것이 수인선을 이용하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글 =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 사진 =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