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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판타지는 현대문화의 우점종이다. 도서관 대출순위나 지난 이십년간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판타지 장르의 분포도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척도다. 실례로 한 지상파 방송은 20대 총선 개표방송에서 '스타워즈'의 오프닝 시퀀스와 '반지의 제왕'의 모티프를 활용하여 눈길을 끌었다.

인공지능과 IT 그리고 생명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마법사와 드래곤과 엘프 같이 허무맹랑하고 초자연적인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공위성이 높이 뜰수록 문화의 수준은 떨어지고, 과학기술이 고도화하면 할수록 신화적이고 신비적인 것들이 더 번성한다는 말대로 이 퇴행과 역설은 현대 하이테크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판타지가 꾸준히 읽히고 소비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현대물질문명에 대한 염증과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불만과 기성문학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국민들의 불안지수가 높으면 보수 집권당이, 불만지수가 높으면 진보 정당이 유리하다는 통설을 판타지 분석에도 고스란히 적용해볼 수 있을 듯하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을 구현하는 테크놀로지의 마술성에 더해 극심한 청년실업 등 답답한 현실이 우리 청소년들을 모험과 판타지라는 인공의 낙원 속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게임 개발사와 영화사 등 문화자본의 마케팅 전략과 시험문제처럼 감동 없는 기성문학을 탓하는 것은 너무 촌스럽다.

그러면 판타지는 무엇인가. 사전과 정신분석학과 문학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 우선 공상 · 환상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무의식적 환상(phantasy)과 의식적 환상(fantasy)으로 나누는 정신분석학의 정의가 있다.

즉 의식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상상과 공상이 자유로이 활동하도록 놓아두는 명(몽)상의 상태가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판타지이다.

문학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하다. 판타지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내용을 다룬 이야기(서사체)를 가리킨다. 근대의 핵심을 종교나 신화의 지배에서 벗어난 사회 곧 탈주술화로 보는 막스 베버(1864~1920)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판타지는 탈주술화 시대의 재주술화에 다름 아니다.

J. R. R. 톨킨(1892~1973)의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과 문법을 바탕으로 하고 미즈노 료(1963~)의 '로도스도 전기'에서 스토리텔링 방법을 터득한 독자들과 머드(MUD) 게임을 즐기며 잔뼈가 굵은 유저들이 만든 청년문화가 바로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르판타지의 기원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