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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현대 장르판타지는 '반지의 제왕'의 조카들이다. 문학사는 직선이나 단선이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비약적으로 이어진다는 에리히 아우어바흐(1892~1957)의 말대로 문학작품들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가지 않고 아버지에서 조카나 작은 아버지에서 육촌들에게 계승된다.

과연 현대의 장르판타지들은 톨킨(1892~1973)이 구축한 판타지 세계관과 문법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되, 후대의 작품들은 혈연이나 지연과 관계없이 저마다 독자적으로 백가쟁명의 양상을 보여준다.

영국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국에서 톨킨 유의 장르판타지 열풍이 거센 것이 그 증거다.

한국 판타지의 의숙부(義叔父) 톨킨은 누구인가. 톨킨은 아버지가 은행가였던 관계로 남아공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아버지를 풍토병으로 여의고, 열세 살 때 어머니 메이벨마저 잃는다. 프랜시스 신부의 후원으로 재수 끝에 옥스퍼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하숙집 주인 딸인 에디스와 결혼한 직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1920년 리즈대학 영문과 강사를 거쳐 1925년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톨킨은 별다른 인간관계 없이 오직 연구와 글쓰기로 일관한 삶을 살았는데, 그의 거의 유일한 사교활동은 '인클링스'라는 소규모 옥스퍼드 대학교수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판타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 S. 루이스(1898~1963)가 그 인클링스 멤버였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톨킨이 평생 동안 쓴 판타지는 모두 3종인데, 1937년 '반지의 제왕'의 전편(prequel)에 해당하는 '호빗'을 시작으로 '반지 원정대' '두 개의 탑' '왕의 귀환' 등 3부로 구성된 '반지의 제왕'을 1955년 모두 완성했다.

중간계의 역사를 그린 '실마릴리온'은 그의 사후 장남 톨킨이 펴낸 유고작이다.

'반지의 제왕'은 가족 부재의 문학이다. 주인공 프로도는 빌보 배긴스의 양자로 그려지며, 정상적인(?) 가족관계는 별로 없고 결손가정의 후예들이 많이 등장한다.

또 백인남성중심의 판타지인데다가 북유럽 신화와 중세 기사문학을 방불케 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갈라파고스 섬처럼 그의 문학은 북유럽 신화와 자신의 학위논문인 '거윈卿과 녹색의 기사' 같은 중세기사문학의 세계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 장르판타지가 사회나 기성문학과 담을 쌓고 있는 충성도 높은 은둔형 '덕후'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한 현상은 아닌 듯하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처럼 자폐적 갈라파고스 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이 되는 옴파로스 신드롬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