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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십몇 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학부모 한경숙
한경숙 (남동구 논현동)
매일 아침 허덕이며 출근하지 않게 되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시어머니와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서서히 우울한 날이 늘어갔다.

핸드폰 속의 수많은 연락처 대부분이 직장 동료들과 거래처 관계자들인 것도 우울함을 더욱 부추겼다.

한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일단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평일 낮의 우리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보았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엄마들……. 햇살마저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며칠간 같은 길을 따라 긴 산책이 이어졌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잠시 쉬면서 앉아 있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의 수다가 즐거워 보였다.

한 엄마가 서너 살쯤 된 여자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타났다. 그 엄마는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고, 여자아이는 신나게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육아에 지친 엄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독박육아로 고생했던 내 생각이 나서 괜히 마음이 안쓰러웠다.

엄마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도 엄마의 대답이 시큰둥하자, 꼬마 아가씨는 혼자 앉아 있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꼬마는 자기 인형을 내게 쑥 내밀어 말했다.

"My favorite toy."

"So cute!"

나는 과장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아이는 즐거워하며 조잘조잘 말을 이어갔다.

옆쪽 의자에 앉아있던 아이의 엄마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외국인 모녀와 중년 아줌마의 수다 떠는 모습에 주변의 시선이 꽂힘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아기 엄마는 힘든 육아를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와는 달리 너무나 바빠진 남편 때문에 이른바 멘붕 상태였다.

아기 엄마는 처음 본 내게 이러저러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짧은 영어 실력이라 모두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기 엄마의 지쳐있던 얼굴이 생기있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산책을 하면서 나는 놀이터에서 꼭 쉬었고, 아기 엄마와 즐거운 수다 시간도 늘었다. 그러는 동안 내 기분도 훨씬 좋아졌다.

마흔 두 살의 봄날에 나는 멀리서 온 새 친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