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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게임은 예술일까, 오락일까? 무용한 질문 같지만, 한때 이는 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게임을 제10의 예술로 보는 연구자들은 최근 몇 년 전까지 게임을 서사학(narratology)에서 다뤄야할지 게임학(ludology)에서 다뤄야할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예술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범주화한 것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영화이론가였던 리치오토 카누도(1877~1923)가 연극·회화·무용·건축·문학·음악에 이어 영화를 제7의 예술로 선언하면서 부터다. 카누도가 만든 관례를 따라 제8의 예술에는 사진이, 제9의 예술에는 만화가, 그리고 게임이 열 번째 예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은 원자폭탄 개발 기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전자회로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윌리 히긴보덤이 1958년에 만든 '테니스 포 투'가 처음이며, 컴퓨터 게임의 상용화는 1961년 MIT에 재학 중이던 스티브 러셀이 개발한 '스페이스 워'가 효시다.

장르판타지 게임은 하버드대 학생들이 톨킨의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역할놀이형 보드게임, 이른바 TRPG를 창안해내면서 본격화했다. 'MUD'와 'MUG'는 판타지와 컴퓨터를 활용한 대표적인 게임들로서 전자는 텍스트 형식으로 전개되는 게임이며, 후자는 IT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래픽이 가미된 게임들을 가리킨다.

1974년 TSR社에서 선보인 '던전 앤 드래곤'(D&D)은 테이블 탑 롤 플레이닝 게임의 규칙이면서 동시에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게임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소드 월드', '월드 오브 다크니스', '드래곤 퀘스트', '울티마' 등이 초창기 판타지 기반 RPG들이다.

온라인 시대의 MMORPG(다중접속온라인역할놀이게임)로는 한국에서 출시한 '리니지 시리즈'를 비롯하여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등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판타지는 소설·만화·영화·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몸을 바꿔가면서 장르간의 융합은 물론 다른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형태로 끝없이 변화, 발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소설가 한강이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삼아 세계 속에 K-pop과 한류드라마는 물론 K-픽션과 K-판타지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현실의 바깥을 상상하는 창의적 사고 실험을 통해 예술과 역사의 발전을 선도하는 진짜 판타지가 나와 주길 고대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