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군자봉.성황제.산제.(2014)
시흥시 군자봉성황제의 산제(山祭) 모습. /시흥시청 향토사료실 제공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
음력 10월3일 신목 주변서 거행
전승계보·역사성·향토성 갖춰
대동단결 마을축제 현대적 가치


아주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은 마을 주변의 우뚝 솟은 전망 좋은 산을 선택해 그 정상부에 제단을 설치하고 주변에 깊은 구덩이를 파서 일정한 구역을 만들었다. 이렇게 산 정상부 8~9부 능선을 따라 돌린 원형의 도랑을 전문용어로 환호(環濠)라 부른다.

경기도의 경우, 환호 주변에서 청동기시대의 집터가 확인돼, 성역(聖域)의 표시인 환호 유적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3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고고학의 연구 결과를 따를 때, 환호 내부에서 제사용 그릇이나 불탄 흔적이 발견돼 환호 안쪽의 공간에서는 의례 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되며 산 정상이라는 입지를 고려할 때 그곳에서의 의례는 하늘에 대한 제사, 즉 제천(祭天)이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또 이런 제사 공간에 도랑을 파서 경계로 삼은 것은 성속(聖俗, 상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구분 짓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출산 후 집 입구에 금줄을 두르거나 동제(洞祭) 때 당산나무에 새끼를 둘러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하는 것과 상통한다.

한편,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굿인 성황제(城隍祭) 역시 해자를 뜻하는 '황(隍)'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어, 청동기시대의 환호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제사 목적의 환호 유적이 도 서남부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듯이, 오늘날 성황제 역시 시흥, 안산, 수원, 화성 지역에 그 전통이 잘 보존·유지되고 있다. 이들 도내 성황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성황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연 2015년 12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된 '시흥 군자봉 성황제'다.

이 군자봉성황제는 곽명월-김부전-김순덕-고현희로 이어지는 모계(母系) 전승계보가 뚜렷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성이 깊으며, 성격상으로 도 일원을 중심으로 하는 도당굿의 일종이기에 향토성도 뚜렷하다.

이렇듯 무형문화재 지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전승계보, 역사성, 향토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고, 그러기에 도를 대표하는 문화자산이라 해도 무방하다.

원래 군자봉성황제는 해발 199m의 군자봉 정상에 있는 성황당에서 이루어졌는데, 성황당이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성황당을 지켰던 신목(神木) 주변에서 매년 음력 10월 3일에 열린다. 신격으로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 김부대왕(金傅大王, 경순왕)을 모신다.

내용은 산정상의 상당(上堂)에서 부락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제(山祭), 산을 내려와 신격이 모셔진 당집에서 펼치는 하당(下堂)굿, 성황제 하루 전 성황신을 상징하는 '서낭대'를 모시고 마을을 돌며 평안과 복락을 비는 유가행렬(遊街行列, 길놀이) 등으로 이뤄져 있다.

군자봉성황제는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동제 또는 대동제의 성격이 강하다. 지금은 군자봉 아래에 자리한 구준물 사람들에 의해 계승·전수되고 있는데, 마을의 화합을 다진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적지 않다.

또 공동체 의식이 너무나 엷어져 버린 현대사회에서 구성원 모두가 참석하여 대동단결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현대적 가치도 빼어나다. 아울러 춤, 음악, 여흥, 소원 빌기가 함께 하기에 마을축제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야말로 잘만 살리면 소중한 문화자산이 되기에 충분하다.

시흥의 군자봉성황제는 작년에야 '안산 잿머리 성황제'(도 무형문화재 제58호)와 함께 도 문화재로 지정됐다. 군자봉성황제는 지역 성황제의 종가격이다. 왜냐하면 신격인 김부대왕을 안산 성곡동 잿머리, 화성 우음도, 그리고 수원 평동 벌말에서도 모셨는데, 그곳의 성황당이 김부대왕이 행차할 때 잠시 머무는 작은당이라 전하기 때문이다.

도를 대표하는 성황제가 늦게나마 지정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시흥시청 향토사료실의 지속적인 가치 발견, 시흥시문화원의 적극적 지원, 그리고 군자봉성황제 연구보존회(회장·한정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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