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원산대놀이
퇴계원산대놀이 중 11번째 마당 포도부장놀이 장면.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 제공

강원·함경도 문물 한양가는 통로
통나무 조각해서 만든 탈 '특징'
섬세·우아한 춤 유연한 굴곡 가락
통쾌한 현실 폭로 민중의식 담겨


중국을 포함한 한자문화권에서는 왕성 주변의 5백리 땅을 기전(畿甸)이라 하였는데, 사실상 경기(京畿)라는 말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경기'라는 말에는 행정구역의 느낌이 강하고 현재 시점의 경기도 지역만이 연상되기에, 전통시대 경기도의 땅이었던 인천과 강화도, 4대문 밖 서울지역, 충청도의 일부분, 북한의 개성 등을 통칭할 때에는 적절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까닭에 전라도를 호남, 경상도를 영남으로 부르듯이 지역적 범위를 표현할 때에는 기전이란 용어가 좀 더 적합한 경우가 많다.


어쨌든 기전지역은 수도 한양이라는 치아(齒牙)를 떠받치고 있는 잇몸과 같은 땅이므로, 그야말로 근기(近畿)이자 근기(根基)이다.

또 서울로 향하는 사람과 물산이 모여드는 길목이자 집산지이다. 아울러 궁중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기전의 문화에는 민중의 문화를 기저로 하면서도 고급스럽고 세련된 궁중 문화가 녹아있다.

한마디로 기전문화는 점이적, 절충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왕실과 지방을 연결·소통시키는 중간자적, 매개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런 기전문화의 고유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문화유산이 '산대놀이'다. 산처럼 높은 무대, 즉 산대(山臺)를 만들어 그곳에서 놀이판을 펼쳤다고 하여 '산대놀이'라 부른다. 이 산대놀이는 경남의 야류(野遊)와 오광대(五廣大)와는 구별되는 기전지역의 가면극으로 지역성이 뚜렷하다.

또 농악기만으로 연주되는 통영오광대(統營五廣大)나 동래야류(東萊野遊)와는 달리 전문연주자가 연희자와 분리되어 앉아서 연주하는 차별성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춤사위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중부지방 무용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특히 노래 가락은 남도 민요에 비하여 가락의 굴곡이 유연하면서도 다채롭게 진행되는 경기민요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산대놀이는 기전지역의 문화적 속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경기도의 문화자산이라 할 수 있다.

퇴계원산대놀이는 양주별산대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2호)와 함께 경기도를 대표하는 산대놀이이다. 기본적인 구성과 내용은 양주별산대놀이와 엇비슷하다.

이는 현재의 남양주 퇴계원이 과거 양주에 속했던 사실과 놀이꾼의 대표격인 한원근(1870-1933)이 양주별산대놀이를 배워와 퇴계원 산대놀이를 시작했다는 증거 등으로 미루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강원도와 함경도의 문물이 들어오는 유일한 길목인 퇴계원이라는 교통중심지에서 펼쳐진 연회라는 점, 연초가공업에 종사하는 놀이꾼들이 상업적 이익을 노린 상인이나 부호들의 지원을 받아 공연을 했다는 점, 양주별산대놀이 등의 탈은 바가지를 주재료로 한 데에 비하여 퇴계원산대놀이의 탈은 오로지 통나무로 조각하여 만든 점 등에서 퇴계원산대놀이만의 특색이 있다.

한편, 서울대박물관 소장 산대놀이 가면 16개 중 먹중탈 뒷면에 '양주군 퇴계원리 산대도감 사용 경복궁조영당시(楊州郡 退溪院里 山臺都監 使用 景福宮造營當時)'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1990년대에 복원된 퇴계원산대놀이의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퇴계원산대놀이에는 춤과 노래가 있어 신명나고, 현실 폭로가 이어져 시원하며, 지배계층에 대한 풍자가 적지 않아 통쾌하다. 조선후기 민중의 삶과 의식을 엿볼 수 있기에 역사적 의미 또한 깊다. 아울러 12마당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지루하지 않으며, 가면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흥미롭고 볼만하다.

이렇듯 퇴계원산대놀이에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 공연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충분하고, 전술했듯이 경기전통예술의 고유성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거의 퇴계원 지역에서만 공연이 이루어져 왔다. 앞으로는 경기도가 주관하는 행사에 자주 초빙되어 경기도민의 애환을 달래주고 흥을 돋우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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