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총장 대선 염두 행보 아쉬워… 남경필 경기도지사 연정은 훌륭한 시도
'통일·연대에 대한 관심' 김포는 통일한국의 정치행정수도 될수있는곳 '의미'
이장·군수·도지사·장관·대선 경선까지… 지역주의 타파 '리틀 노무현' 별명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 도와줄 사람·정책 준비된다면 결심할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노력해 성공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흔히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김포갑) 의원은 아마 이런 단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장에서 출발해 남해군수, 경남도지사,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고 대선까지 도전했던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쳤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4번 낙선하고 5번 만에 당선돼 말 그대로 4전5기의 승리를 거뒀으니 말이다.
이제는 김포지역에서 통일과 그 이후의 그림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그를 만나 20대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적 포부를 들어봤다.
-민심은 총알보다 빠르다
김두관 의원은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4·13총선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마도 너무 힘겹게 국회의원에 당선됐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이장과 군수를 거쳐 도지사, 행자부장관까지 거치는 동안 승승장구 해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의 선거 승률은 채 절반이 안됐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제가 실패한 게 별로 없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난 그동안 선거를 총 12번 치렀다. 남해군수 선거에서 2번 이겼고,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경남도지사, 그리고 20대 국회의원 당선까지 총 5번 승리했다. 반대로 도지사 선거 2번, 국회의원 4번, 대선 경선까지 총 7번 떨어졌으니 선거 승률은 40% 정도 된다. 특히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남해·하동군 선거에서 민중의당 후보로 첫 국회의원에 도전한 뒤 17대, 18대, 2014년 7·30 김포 보궐선거까지 내리 실패하고 올해 4·13총선에서 승리해 국회 문을 두드린 지 28년 만에 당선된 것이다."
패배의 아픔을 많이 겪은 탓인지 그는 나름대로의 선거 철학이 있다.
"링컨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했다. 이 말을 김두관식으로 살짝 바꾸면 '투표는 총알보다 빠르고, 투표보다 더 빠른 것은 민심'이라고 할 수 있다. 4·13 총선 한 달 전쯤 김포 유권자들은 누구를 찍을지 마음속으로 다 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등을 보고 선거에서 이겼다고 자만하는 순간 민심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후보자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도 선거 전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포를 지역구로 선택한 과정에 대해 김 의원은 "개인적으로 '통일'과 '연대'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김포가 굉장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곳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7·30 보궐선거 당시 처음 김포 지역구에 도전했었는데, 김포는 향후 통일 한국의 정치행정 수도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제일 남쪽인 남해에서 왔고, 이제는 분단 지역에서 제일 북쪽인 김포에 와 있다. 평소 통일문제와 관련된 특강에 나가면 마지막에 꼭 이야기를 하는 게 있다. 저는 분단된 조국 가장 남쪽인 남해에서 태어났지만, 제 소원은 통일이 되면 함경북도 가장 북쪽인 온성에서 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꿈이라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김포는 매우 의미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장과 군수, '리틀노무현'이 되기까지
김의원은 자신이 '이장'을 역임한 것도 정치경험을 쌓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이라는 자리가 마을에서는 꽤 중요한 자리이다. 이장은 주민과 행정기관의 연결고리다. 군정방침이나 도정방침은 최초로 마을 이장을 통해 주민들에게 전파되고, 이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읍면동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공무원 출신은 아니지만 이장이 준공무원 성격을 갖고 있어서 행정 체계를 배우고 싶어 이장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그냥 한 게 아니다."
남해군 이어리 이장을 거쳐 그는 1995년 민선1기 지방선거에 출마, 남해군수에 37세 최연소로 당선된다. 그리고 15년 뒤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 53.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경남도지사에 3번 도전해 겨우 당선된 것이다.
"보통 도지사 선거에 한 번 떨어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 도지사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의 10배 정도는 힘드니까.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호출해서 청와대에 갔더니 도지사 출마를 권유해 못하겠다고 했더니 '저랑 인연 끊을 거면 안 나오셔도 됩니다'해서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결과적으로 낙선했는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직 잘하고 있는 사람을 선거판에 밀어 넣은 대통령이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게 노 대통령은 '단체장은 낙선을 해도 정치적 자산이 좀 남을 겁니다'라며 위로했다. 그리고 실제로 2010년에 도지사에 당선되고 나서 선거를 복기 해봤더니 노 대통령이 했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는 '리틀노무현'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우리 둘 다 농민의 아들이고, 내가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도전하는 모습이 노 전 대통령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한 거 같다. 그 별명이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노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나 철학을 제대로 승계하지 못한 것 같아서 부담도 된다."
한편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샘터'라는 잡지를 통해 송나라 유학자 육상산의 글을 읽게 됐다.'不患貧 患不均(불환빈 환불균), 백성은 가난한 것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2017년 대선에 대해서 말하다
내년 대선과 관련해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 다소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
"반기문 총장이 한국을 다녀가더니 대선을 염두에 두고 'TK(대구 경북) + 충청연합' 같은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던데 이 얼마나 정치공학적이고 퇴행적인 사고인가.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불공평·불공정,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이런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집권자가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안 되고 오히려 노인·청소년 자살률은 늘어만 간다. 반 총장이 정말 대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런 문제가 왜 발생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먼저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어디를 공략해서 어떤 표를 얻어야 하고, 정치 거물 누구를 만나는 식의 이런 사고는 완전 옛날 방식이지 않은가? 아무리 젊게 사고를 한다고 해도 원래 그분이 자라온 환경과 세대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또 전문관료생활을 이어온 분이시고, 정치를 쭉 해오던 분이 아니셔서 (대선출마에는)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또 다른 대권 후보인 남경필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경기도 연정의 성과는 세세하게 모르겠지만 남 지사가 하는 연정 방식은 여야간의 대연정으로 훌륭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이 정당을 초월해 초당적 협력을 했듯이 지방자치에서는 꼭 필요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극우나 극좌적 시각으로는 국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머리를 맞대 국가는 계속 발전해야 하고 개인은 행복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1천300만 경기도에서 선도적으로 연정시도를 하는 남지사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의원은 본인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상당히 말을 아꼈다.
"2012년 독일에서 연수를 할 때 유럽사회를 한 바퀴 돌아보니까 시대정신, 역사적 과제,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정책이 준비 된다면 (대선출마)결심을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정치인 중에 대권과 당권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조건이 안되고 상황이 안 돼서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지사나 국회의원까지는 자기노력으로 할 수 있는 자리지만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김포시민들을 위해 그동안 밀린 숙제를 하고 싶다. 김포시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총선 출마 때 내세웠던 공약의 최소한 60~70, 많으면 80%까지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래서 상임위도 국토위에 가는 거다.(웃음)"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1958년 10월 23일(음력) 경남 남해 출생
-1977년 남해종합고졸
-1987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졸
-1987년 남해농민회 사무국장
-1988년 남해군 이어리 이장 선출
-1989~1995년 남해신문(주)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편집인
-1995~2002년 경남 남해군수(민선 1·2기)
-2003년 행정자치부 장관
-2005~2006년 대통령 정무특보
-2006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2010~2012년 경남도지사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김포갑)
대담/김학석 정치부장·정리/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