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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무협소설은 관습적인 장르다. 이야기 구조와 패턴, 배경과 인물 등 모두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현대장르문학인 무협소설을 전근대 고소설로 오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협소설의 관습은 어디에서 오는가? 익숙한 이야기 구조와 플롯 그리고 배경의 도저한 보수성 때문이다. 정영강(丁泳强)이 정리한 무협서사의 패턴은 이러하다.

원수의 도발로 문파나 가문이 무너진다(1). 가까스로 도피(2)한 주인공이 스승(3)을 만나 무공을 수련한다(4). 복수를 위해 강호로 나가(5) 우연히 위기에 빠진 절세의 미인을 만나 구해주거나 인연을 맺고(6), 실패 혹은 좌절(7)을 겪는다. 새로운 스승과 비급을 만나거나 얻지만(8), 애정전선에 갈등이 생긴다(9). 치명적인 부상을 입으나(10), 곧 회복하고(11) 진귀한 보물을 얻는다(12). 마침내 적을 물리치고(13), 성공을 거둔 다음(14), 강호를 떠난다(15).

작품마다 가감과 다소의 변용은 있으나 대개 이 패턴이며, 신무협은 누벨바그 영화처럼 이런 도식을 거부하거나 해체한다.

중국 무협소설의 크로노토프(chronotope)는 시간적으로는 송(宋)에서 청말(淸末), 공간적으로는 강호라는 특수한 공간이다. 크로노토프(chronotope)란 작품 속에서 시간과 공간이 맺는 내적 연관 관계 즉 시공을 의미하는 말로 현대소설의 기원을 민속과 민중에서 찾은 러시아 문예이론가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이 개발한 신조어다.

강호는 본래 중국의 삼강오호(三江五湖)를 가리키는 지리명사였으나 후대로 가면서 관부(官府)의 지배와 실정법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무협의 세계를 표상하는 말로 변모했다. 예컨대 강호는 치열한 무공대결과 함께 살인과 싸움을 소재로 한 폭력의 서사가 될 수밖에 없기에 윤리적 지탄과 범법을 피하기 위해 만든 허구의 세계요, 치외법권 지대이다.

무협의 대표적 플롯으로는 진귀한 보석이나 무림비급을 둘러싸고 벌이는 보물쟁탈형(寶物爭奪型), 이민족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족의 영웅을 그린 민족투쟁형(民族鬪爭型), 추리와 무협을 결합시킨 탐안형(探案型), 세상을 떠돌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행협형(行俠型)과 유랑자형(流浪者型), 수련을 통해 무림의 고수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학예형(學藝型), 혼사장애를 다룬 애정갈등형(愛情葛藤型) 등이 있다.

한동안 대학도서관에서 대출순위 1위로 각광받은 전동조의 '묵향'은 무협과 장르판타지가 결합된 퓨전 장르, 곧 '판협지'다. 이 같은 몇 개의 플롯과 이야기 패턴이 다양하게 조합, 변주되면서 무협의 화엄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